'사법농단' 이민걸·이규진, 2심도 유죄…형량은 줄어

by한광범 기자
2022.01.27 16:12:54

이민걸 전 기조실장, 징역형 집유→벌금 1500만원
이규진 전 양형실장, 징역 1년 집유 2년으로 감형
法 "재판독립 훼손 명백"…재판개입권 인정 안해

사법농단 관련 혐의로 1·2심에서 모두 유죄 판결을 받은 이민걸·이규진 전 부장판사.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사법농단 관련해 기소된 전·현직 법관 중 유일하게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던 이민걸·이규진 전 부장판사에게 2심에서도 유죄가 선고됐다. 다만 유죄 부분이 감소해 형량은 줄었다. 1심 재판부가 인정해 논란이 됐던 ‘대법원장의 재판개입권한’을 2심은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고법 형사13부(최수환 최성보 정현미 부장판사)는 27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에게 1심의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판결을 파기하고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에 대해선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1심보다 감형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사법농단 관련해 기소된 전·현직 법관 14명 중 유죄 판결은 두 사람 뿐이다.

재판부는 이민걸 전 부장판사에 대해 “일반 법관의 사법행정에 대한 신뢰 저하와 일반 국민의 사법불신 초래해 사법 독립성을 침해한 불법성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일반 법관의 피해가 실질적으로 크지 않은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규진 전 부장판사에 대해선 “계속적 구체적 사건의 재판 결론을 법원행정처 입장에 부합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재판부에 행정처 법리 등을 전달하게 해 법관과 재판 독립성, 공정성을 훼손했다”고 질타했다.

이민걸·이규진 전 부장판사는 2015년 5월~2016년 6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과 공모해 헌법재판소의 위헌정당해산결정을 받은 통합진보당 관련 행정사건에 개입한 혐의 등을 받는다. 이들은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들과 비례대표 지방의원들이 ‘의원직 상실’에 불복해 제기한 행정소송과 관련해 재판부에 법원행정처 입장을 전달하는 방법 등으로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또 2017년 1~2월엔 사법행정에 비판적이었던 연구모임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와해를 위해 연구회 중복가입 해소조치를 지시한 혐의도 받는다. 이민걸 전 부장판사는 이와 별도로 2016년 10~11월 국민의힘 의원들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담당 재판부의 심증을 확인하라는 지시를 한 혐의도 있다.

이규진 전 부장판사는 양형실장으로 부임한 2015년 2월부터 2017년 4월까지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지시를 받고 헌법재판소 파견 판사를 통해 서면심리와 평의 등 헌재 내부 정보와 동향 등을 불법적으로 수집한 혐의를 받는다. 또 2015년 4월 서울남부지법에서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결정을 내리자 재판부에게 해당 결정을 직권취소하고 단순위헌 취지의 위헌제청결정을 하도록 해 재판에 개입한 혐의도 있다.



아울러 2016년 7월 동일한 사안을 두고 대법원과 헌재가 동시에 심리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양 전 대법원장 등과 공모해 대법원 재판연구관에게 헌재보다 빨리 선고가 될 수 있도록 대법원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재판부는 인권법연구회와 인사모 와해를 위한 대응 문건을 행정치 심의관에게 작성하도록 한 혐의에 대해 1심과 마찬가지로 일부 유죄를 선고했다. 또 통진당 행정소송과 관련해 서울고법 2심 재판에 개입하기 위해 행정처 심의관에 1심 판결의 문제점과 향후 대책을 담은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혐의도 유죄 판단이 내려졌다.

개별 혐의 중 이민걸 전 부장판사가 서부지법 기획법관에게 국민의힘 국회의원 사건 담당 재판부 심증을 파악하도록 지시한 혐의도 유죄가 내려졌다. 이규진 전 부장판사에 대해선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에게 법원행정처 통진당 보고서를 재판부에 전달하도록 한 혐의도 1심에 이어 유죄로 판단됐다. 또 행정처 심의관에게 통진당 지방의원 지위확인소송을 심리하는 전주지법 재판부 심증을 파악하도록 지시한 혐의도 유죄 판단이 내려졌다.

아울러 헌재 파견 판사를 통해 헌재 내부 정보를 수집 혐의에 대해선 1심이 유죄로 인정한 51개 문건보다 많은 138개 문건에 대해 유죄로 판단했다. 남부지법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결정을 취소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법원행정처 심의관에게 대책문건을 작성하도록 지시하고 담당 재판장에게 법원 내부통신망에서 결정문이 검색되지 않도록 요청한 혐의에 대해서만 1심에 이어 유죄로 판단됐다.

재판부는 다만 1심이 유죄로 인정한 일부 재판개입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개입에 대한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가 성립되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재판사무에 관여할 ‘직무권한’이 인정돼야 한다. 그 같은 직무권한이 인정될 경우에 한해 재판부의 권리행사를 실제로 방해했는지를 따져 유무죄를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 등 사법행정권이 재판사무에 개입할 권한이 있다’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재판장 윤종섭)의 판단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재판부는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재판 지적권한이 인정될 경우 모든 재판절차에 상시 감독을 할 수 있는 조직과 체계를 필요로 한다”며 “그 같은 조직·체계는 헌법이 천명하고 있는 사법권 독립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심증을 재판부에 전달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방창현 부장판사와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2심 배당을 불법 개입한 혐의를 받던 심상철 전 서울고법원장에 대해선 1심에 이어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