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친박-김무성 충돌, 확전이냐 휴전이냐(종합)
by김정남 기자
2015.10.01 20:07:29
김무성, ''항의성'' 보이콧 등 보이다가 사실상 휴전 제안
잠시 공방 가라앉을수도…전략공천 등 충돌불씨는 여전
국민 안중에 없는 밥그릇 싸움 비판도…민생 표류 우려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확전이냐, 휴전이냐. 1일 정가는 여권 내부의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파동’으로 냉온탕을 오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친박계·청와대가 사생결단 식의 결사항전을 불사하는 것 같더니, 김 대표가 다시 “더이상 공방을 벌일 생각이 없다”고 하면서 확전을 자제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번 공방은 내년 대권까지 연관됐다는 관측이 있을 정도로 ‘무게감’이 있다. 그럼에도 당분간은 ‘유승민 정국’ 같은 극단적 결말까지 가진 않을 것이란 관측도 조심스레 나온다.
김 대표는 이날 오전 내내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다. 이날 오전 8시 당 최고위원회의부터 나오지 않았다. 김 대표가 직접 주재하는 당 최고위에 갑자기 불참한 건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당 내부는 곧장 술렁였다.
김 대표 측근 인사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나오지 않은 것”이라고 했지만, 여권에서는 ‘항의성’ 보이콧설이 나돌았다. 김 대표가 전날 당 의원총회에서 “오늘까지만 참는다”고 한 발언도 회자됐다. 김 대표는 이날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제76주년 국군의날 행사도 나가지 않았다. 부산 지역행사 참석 일정도 취소했다. 여권 관계자는 “김 대표도 국민공천제 취지만큼은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 대표의 불참으로 최고위는 어수선했지만 친박계는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친박계 좌장 격인 서청원 대표가 앞장섰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의 부산 회동을) 누가 조율했는지 책임이 있어야 합니다. 정치가 뭔지도 모르고 의제가 뭔지도 모르고 이 문제가 미칠 영향도 모르고 대표한테 딱 갖다 줘서, 합의하도록 한 당내 참모들도 다 문제가 있습니다.” ‘김무성 찍어내기’를 넘어 김 대표의 측근그룹 전체로 화살을 겨누겠다는 해석도 나왔다.
신율 명지대 정외과 교수는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갈등이 안심번호 공천제로 표출된 것”이라면서 “실질적으로 미래의 당을 누가 지배하느냐의 문제여서 양쪽 모두 다급하다. 절박성은 옳고 그름으로 따져선 안 된다”고 했다.실제 김 대표도 이날 ‘물러서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당 최고위 3시간여 후인 오전 11시께. 김 대표는 국회 의원회관에 있는 사무실로 나와 기자들과 만났고,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당 대표로서 민주정당에서 어떤 비판도 수용하지만 비난하지는 말라”고 했다. 국회로 나오기 전 여의도 자택 앞에서는 “평소에는 청와대와 자주 통화하는데 이런 일이 생기면 통화가 잘 안 된다. 내가 또 안 하게 되고”라고도 했다.
상황이 바뀐 건 이날 오후부터다. ‘관망모드’였던 청와대가 김 대표의 발언에 반박하면서다. 김 대표는 “(부산 회동을 사전에 청와대에) 통보했다”고 했는데, 이에 청와대 관계자가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은 당시 김 대표에게 안심번호 국민공천제가 당론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고 문제점이 많다며 반대 입장을 전했다”고 전한 것이다. 사전협의는 사실이지만 반대했다는데 방점이 찍혔다.
그러자 김 대표는 곧바로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일부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반대한 사실은 들은 것은 없다”면서도 “걱정과 우려의 말씀을 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더이상 이걸 가지고 공방을 벌일 생각이 전혀 없다. 반대라고 한다면 수용하겠다”며 청와대와 확전에 부담감을 드러냈다. 당분간 휴전하자는 제안으로도 읽힌다. 공방이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다만 양측간 충돌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 청와대 한 참모는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에)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것을 다 아는데, (김 대표가) ‘오늘만 참겠다’며 재갈을 물리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며 내부의 격앙된 분위기를 전했다.
전략공천 여부를 둘러싼 혈투도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김 대표 입장에서 전략공천은 사실상 마지노선이다. 전략공천이 현실화되면 자신의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는 상향식 공천의 취지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당 대표 자리 보전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 김 대표가 이날 “(전략공천은) 전혀 생각이 없다”고 재차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친박계의 이해관계는 전혀 다르다. 친박계 중진인 홍문종 의원은 KBS 라디오에 나와 “지금 야당은 전략공천을 이미 공언했고 새로운 사람, 친화력있는 사람, 신망 있는 사람들을 공천하겠다고 하지 않느냐”고 했다. 친박계의 이런 입장은 박 대통령의 공천권을 보장하라는 뜻이라는 게 정설이다.
양측의 주장은 그 중간지점을 찾기 쉽지 않다. 전략공천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로 단순화되면, 결국 정치적 세(勢) 대결에 따라 계파간 운명도 갈릴 가능성이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런 치킨게임 양상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여권 내부가 죽기살기로 ‘밥그릇 싸움’에 달려들면 모든 민생 현안들이 일거에 표류할 수 있는 탓이다. 여권이 한목소리를 냈던 노동개혁 입법이 동력을 잃을 위기에 처했고, 가뜩이나 ‘졸전’이었던 올해 국정감사가 후반기 들어 더 시들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올해 국감은 역대 최악인 것 같다”고 했다. 여권이 몇년째 강조한 경제활성화 법안도 처리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국민들로부터 표(票)를 받는 정치인들이 정작 국민들이 꺼려하는 과열된 정쟁을 할 경우 정치불신은 더 커질 수 있다.
최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역대 대통령들이 퇴임 이후의 안전과 영향력을 위해 자기세력을 극대화하려 했는데 의지대로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면서 “차라리 국민들을 상대로 한 민생정치가 민심을 얻는데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