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 없다"→"단계적 인상"..文 정부 오락가락 경유세(종합)
by최훈길 기자
2017.07.06 17:07:53
김진표 "휘발유값 이상으로 경유값 인상 검토"
하반기 논의 착수, 내년 6월 지방선거 후 개정
'인상 없다' 기재부 발표 10일 만에 뒤집어
"국민부담만 늘리는 제2 담뱃세 논란" 반발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를 준비 중인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이 단계적인 경유값 인상 입장을 밝혔다. ‘경유세 인상 계획이 없다’는 정부 발표를 뒤집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김진표 위원장은 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경유 가격을 단계적으로 서서히 인상을 유도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그렇다”며 “몇 단계로 나눠서 경유 전체의 소비를 줄여가는 방향으로 가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정기획위나 정부 장관급 인사 중에서 경유 가격 인상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위원장은 “미세먼지 등 환경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경유 가격을) 휘발유보다 같은 수준 또는 휘발유보다 약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정책 권고가 많은 나라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우리도 이제 그런 면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는 경유 가격(1237.9원/ℓ·6월 넷째주 기준)이 휘발유 가격(1447.6원/ℓ)보다 리터당 200원 가량 싸다.
국정기획위는 이 같은 가격 체계를 내년 6·13 지방선거 이후 개편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 위원장은 “(생계용 경유차) 문제에 대한 보완대책을 강구하면서 내년 재정개혁 때 (인상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박광온 국정기획위 대변인(국회 기획재정위 여당 간사)은 통화에서 “경유세를 어떻게 할지는 신설하는 조세·재정개혁 특별위원회에서 논의를 해봐야 안다”면서 “특위에서의 경유세 논의 결과가 내년 하반기 세법개정안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세법 개정안은 내년 7월께 마련될 예정이다.
김 위원장의 ‘단계적 인상’ 발언이 알려지자 관계 부처는 이미 뒤숭숭한 분위기다. 민감한 조세정책인데 양측이 조율된 게 없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김 위원장 발언에 대해 “당혹스럽다”며 “현 단계에서 경유세를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세제실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기재부와 협의한 게 아니다”면서도 “국정기획위에서 방향이 정해지면 그 쪽에 따라 (세법 개편 관련해) 일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서 지난 한 달간 경유세 관련 조세정책은 오락가락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달 5일 공개된 청문회 서면답변서에서 “8월에 연구용역 (최종) 결과가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와 함께 (휘발유·경유·LPG) 상대가격 조정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최영록 기재부 세제실장은 지난 달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용역 결과 경유세 인상이 미세먼지 절감 차원에서 실효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경유세 인상은 전혀 고려할 게 없다”고 말했다. ‘현 정부에서 경유세를 인상할 계획이 없는지’ 묻는 질문에도 “그렇다”며 “에너지세제 개편을 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사흘 만에 이 입장이 다시 바뀌었다. 국정기획위는 지난달 29일 ‘새 정부 조세개혁의 방향’ 주제로 브리핑을 열고 조세·재정특위를 신설해 하반기부터 경유세 등 수송용 에너지세제 개편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후 김진표 위원장이 6일 단계적 인상 방침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기재부가 “개편·인상이 없다”고 밝힌 지 10일 만에 “단계적 인상”으로 발표를 뒤집었다.
김 위원장 입장대로 경유세가 인상될 경우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기재부·국토교통부·산업통상자원부·환경부가 의뢰해 지난 4일 발표된 조세재정연구원 연구용역에 따르면, 경유 가격을 현재보다 두 배 비싼 가격(ℓ당 2636원)으로 올려도 국내 대기오염물질 총 배출량(2014년 기준) 대비 초미세먼지(PM2.5) 배출량이 2.8% 줄어드는데 그쳤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경유세를 올리면 국민 부담만 늘어나고 미세먼지 감축도 못할 가능성이 높다”며 “‘제2 담뱃세’ 논란이 일어 국민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