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등 애국지사 잠들어 있는 '효창공원', 국립묘역 지정 재추진되나

by김관용 기자
2018.02.28 16:39:40

내년 3.1운동·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애국선열에 대한 예우 문제 다시 대두
국립묘지 이장, 유족 반대로 추진 어려워
효창공원 국립묘지 승격 재추진, 주민 반발 변수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서울 용산구 효창동 효창공원 북쪽 높은 동산에는 독립운동가인 애국선열들의 묘역이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석오 이동녕 선생과 백범 김구 선생 뿐 아니라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군무총장을 지낸 청사 조성환 선생, 임시정부 비서장을 지낸 동암 차이석 선생 등 임정요인 4인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또 윤봉길·이봉창·백정기 등 ‘3의사(義士)’의 묘소 뿐 아니라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모시기 위한 ‘가묘’(假墓)도 있는 곳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해 8월15일 제72주년 광복절을 맞아 효창공원 안에 있는 백범 김구 선생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애국선열들의 묘소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관리하는 곳은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다. 문화재보호법의 적용을 받는 ‘사적공원’과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 ‘근린공원’으로 지정돼, ‘공원’으로서의 성격이 강해 애국선열들이 국가적 차원의 예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내년이 3·1운동 100주년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는 가운데, 이들 애국선열 묘역에 대한 예우 문제가 다시 화두가 되고 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은 지난 19일 기자 간담회에서 “대한민국의 법통인 임시정부 주역을 모셔야 현충원이 대한민국 정통성을 상징하는 곳이 될 수 있다”며 김구 선생의 묘역 이전을 언급했다.

그는 “현재 효창공원에 안장돼 있는 김구와 윤봉길·이봉창·안중근 열사 등은 모두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 주역들이자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이라는 헌법적 가치에 부합하는 인물인데 국가적 차원의 참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이들은 현충원에 안장될 법적·정치적·역사적인 자격을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 등이 올해 2일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참배를 위해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 들어서고 있다. [출처=국립서울현충원]
앞서 김구 선생 묘소 이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추진됐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비교적 큰 규모로 조성돼 있는 김구 선생 등의 묘소를 현충원으로 이장할 경우 관련 규정에 따라 규모를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현충원 관련 규정에 따르면 군 병사와 대령까지의 묘역 면적은 3.3㎡(1평)이며 장군과 애국지사는 26.4㎡(8평)이다. 애국지사로 분류되는 김구 선생 등 7인의 묘역을 현충원으로 이장할 경우 8평 규모로 조성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통령 묘역은 264.4㎡(80평) 정도 된다.

특히 묘지 이장에 대해 유족회나 기념사업회 등은 효창공원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며 반대하고 있다. 과거 효창원으로 불린 효창공원은 조선 22대 왕 정조가 어린 나이에 사별한 맏아들 문효세자와 그의 생모 의빈 성씨 등을 모신 곳이다. 일제는 조선 왕가의 묘역인 이곳을 공원으로 만들고 왕실의 무덤도 다른 곳으로 옮겼다.



김구 선생은 광복 이후 효창원에 터를 잡고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 유해를 이곳으로 이장했다. 유해를 찾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쓴 것도 김구 선생이다. 일제에 의해 훼손된 효창공원을 항일운동의 상징으로 삼았다는 의미다. 김구 선생은 1949년 암살된 뒤 자신도 이곳에 묻혔다. 묘역 이장은 유족들이 신청해야 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백범 김구 선생(맨 앞줄 왼쪽 세 번째) 등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원들이 1921일 1월 1월 신년축하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이 때문에 효창공원의 국립묘지 승격이 대안으로 떠오른다. 지난 2013년 당시 김광진 의원은 효창공원을 국가적 차원으로 관리하는 국립묘지로 승격 지정 하는 개정 법률안을 발의한바 있다. 하지만 국립묘지가 되면 공원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게 되고 집값 하락 우려도 있다는 지역주민들의 반발로 이 법안은 폐기됐다. 당시 서울 용산구의회는 효창공원의 국립묘지 지정 반대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에는 효창운동장을 용산 미군기지 터로 옮기고 효청공원과 합친 17만여㎡를 ‘효창독립공원’으로 성역화하는 계획을 수립한바 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축구계의 반대로 표류하다 결국 좌초했다.

김민석 민주연구원장은 “백범 김구를 비롯해 효창공원에 계신 윤봉길, 이봉창, 안중근 등 건국의 주역을 국립묘지에 모시는 일은 역사 인식과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운다는 면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장이 어렵다면 지금 계신 효창공원을 국립묘지화하는 방안도 충분히 검토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보훈정책 전문가는 “독립운동 영웅들의 묘역을 공원으로 대접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면서 “효창공원은 성역화 돼야 하며 아직 가묘 상태로 있는 안중근 의사의 유해발굴사업도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현재 국립묘지법상 10개의 국립묘지로 한정하고 있는데, 이를 개정해야 효창공원의 국립묘지 승격이 가능하다”면서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의가 우선시 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대구 신암선혈공원은 법 개정을 통해 국립묘역으로 승격된바 있다. 독립운동가 묘소 50여기가 있는 이곳은 기존에 대구시가 관리하던 사적공원이었지만 법 개정으로 국립으로 승격돼 올해 5월 재개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