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피해자', 선거 3주 앞두고 민주당 작심비판…판세 영향 끼칠까(종합)

by공지유 기자
2021.03.17 15:25:31

朴 성추행 사건 피해자, 17일 공식석상 모습 드러내
서울시장 보궐선거 21일 앞두고 민주당 작심 비판
"민주서 시장 나올까 두려워…처음부터 잘못된 선거"
"진정성 있는 사과를"…與, 피해자 발언 입장 밝힐까

[이데일리 공지유 기자]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피해자가 공식석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심경을 밝혔다. 피해자 A씨는 자신을 가리킨 ‘피해호소인’ 명칭 사용 등으로 2차 가해 비난을 받은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작심 비판을 이어갔다.

오는 4월 7일 서울시장 재보궐선거가 열리기까지 불과 20여일 남은 가운데,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 피해자의 발언이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피해자 A씨의 자리가 마련돼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 피해자가 직접 참석해 사건과 관련해 발언했지만 언론 노출은 동의하지 않았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공동행동)은 17일 오전 서울 중구 티마크그랜드호텔 명동에서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을 열었다. A씨는 이날 오전 10시 40분쯤 김재련 변호사와 함께 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A씨가 공식 석상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힌 건 박 전 시장 사망 후 252일 만에 처음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게 된 이유에 대해 A씨는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가 치러지게 된 계기가 이 사건인데 그 계기가 간과되고 있다”며 “저의 피해사실을 왜곡하고 상처 준 정당에서 시장이 선출됐을 때 저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든다”고 설명했다.

A씨는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측의 2차 가해 행위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그동안 ‘피해호소인’ 명칭과 사건 왜곡, 당헌 개정, 극심한 2차 가해를 묵인하는 상황들 모두가 잘못된 것이었다”며 “지금까지 이어지는 상식과 먼 일들로 인해 너무도 괴롭다”고 호소했다.

그는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와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의 사과도 진정성 없다고 지적했다. A씨는 “민주당에서는 피해호소인이라는 명칭으로 피해사실을 축소·왜곡하려 했고, ‘고인의 뜻을 기억하겠다’는 말로 저를 압도했으며 결국 서울시장 후보를 냈다. 선거캠프에는 저를 상처줬던 사람들이 많이 있다”며 “지금까지 사과는 진정성·현실성 없는 사과였다고 생각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박영선 후보는 이날 A씨의 기자회견에 앞서 서울 종로구 안국동 선거캠프에서 “피해자께 죄송하다. 첫 여성시장이 돼 겸손하고 겸허하게 서울시민을 모시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발언자로 현장에 참석한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도 “민주당 우상호 전 서울시장 후보는 ‘내가 박원순, 박원순이 나’라며 ‘대신하겠다’고 했으며, 김진애 열린민주당 후보는 박 전 시장의 족적이 눈부시다고 했고, 박영선 후보는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고 주장한 남인순·진선미·고민정 의원을 감쌌다”며 여당 후보들을 비판했다. 남 의원과 진 의원은 현재 박영선 캠프 공동 선대본부장으로, 고 의원은 선거캠프 대변인을 맡고 있다.

공동행동은 이번 선거가 박 전 시장의 부재로 치러지는 만큼, 위력에 의한 성폭력 근절이 쟁점이 돼야 하지만 본래 취지가 왜곡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보궐선거가 시작됐지만 왜 선거를 하게 된 건지 물을 틈도 없이 정당과 후보들만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시작됐다”며 “공공기관 성폭력 때문에 일어난 선건데 성폭력이 다시 정치적 쟁점으로만 소비되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 A씨도 “이번 선거는 처음부터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정체성이 흔들렸다고 본다”며 “저를 피해호소인이라고 명명했던 의원들에 대해 직접 저에게 사과하도록 박영선 후보가 따끔하게 혼내줬으면 좋겠다. 또 그 의원들에 대한 당 차원 징계가 있어야 된다”고 힘줘 말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피해자 측은 인권위 직권조사로 인해 박 전 시장의 성희롱 사실이 인정된 것에 큰 의미가 있다면서도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A씨는인권위 조사 결과에 대해 “저의 이야기의 신빙성이 인정받고 제 피해 사실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인정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A씨는 그러면서도 “현재 사상 초유의 2차 가해와 직면하고 있고, 저와 가족들은 저의 신상에 대한 게시물들을 지우며 너무 끔찍하고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면서 “이런 부분에 있어 실질적인 지원과 함께 제도적으로 2차 가해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명확하게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혜진 법률사무소 라이트하우스 변호사도 “인권위의 이번 결정은 박 전 시장의 행위를 성희롱으로 인정했다는 의미가 있다”며 “또 위력에 의한 성폭력과 관행처럼 이어온 여성비서의 노동권 침해, 성폭력 피해자 보호장치 부재 등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우리 사회의 병폐를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정의했다.

서 변호사는 또 “이번 사건은 인권위 결과로 끝난 게 아니다”라며 “(서울시, 여성가족부 등) 관련 기관들이 인권위의 제도개선 권고를 받아들이고 충실히 이행해야 진정하고 건강한 피해 회복과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인권위는 지난 1월 25일 박 전 시장의 성적 언동은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의결한 바 있다. 이낙연 전 대표는 인권위 발표 이후인 지난 1월 27일 “피해자와 가족들께 사과드린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편 이날 A씨는 안경과 마스크만 착용한 상태로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낸 채 발언에 나섰다. 현장에 박 전 시장의 지지자와 보수 유튜버들이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장소도 기자회견 시작 2시간 전까지 공개하지 않았다.

블라인드 등으로 A씨의 모습을 가리지는 않았지만, 촬영과 녹음이 금지되고 취재진의 휴대폰 카메라에는 촬영 방지를 위한 스티커가 부착됐다. 취재진들은 피해자 신원 보호를 위해 촬영과 녹음을 하지 않겠다는 서명을 한 뒤 회견장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