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선상원 기자
2016.03.10 17:02:18
문재인 대표직 사퇴 후 활동 자제… 선거지원 쉽지 않아
안철수 천정배 정동영 박지원 모두 지역구에 발이 묶여
김종인 대중적 흡인력 약해… 선거운동 이끌기에는 부적절
손학규, 연대 성사돼 공동 선대위 사령탑으로 복귀할 수도
[이데일리 선상원 기자] 손학규 전 대표의 정계복귀가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지난달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도와달라는 요청에도 별다른 답 없이 미소만 지었던 손 전 대표가 1년 8개월 만에 4·13 총선을 앞두고 기지개를 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손 전 대표는 지난 1월말 모스크바 방문 후 귀국길에 기자들과 만나 정치권 새 판짜기를 언급한 뒤 지난달 2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계간지 ‘창작과비평(창비)’ 창간 50주년 행사에 참석해 다시 정치권 판을 새롭게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전 대표는 이날 축사를 통해 “다산 정약용이 강진 초당에 머물며 (실천했던) 실사구시의 진보적 실용주의 정신이 필요하다”며 “이때 우리는 비로소 정치의 판을 새롭게 짤 수 있고, 우리는 비로소 평화로운 국가연합을 이루고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 전 대표가 총선을 앞두고 연이어 정치권 새 판짜기를 언급하자 정계에 복귀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이번에는 다르다. 총선에서 새누리당 압승 저지를 위한 야권연대를 구축하고 선거운동을 진두 지휘할 수 있는 인물이 손 전 대표 밖에 없다는 현실적 요인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친노세력의 시민통합당, 한국노총이 통합해 만든 민주통합당 당시에는 한명숙 대표 외에도 손 전 대표, 문재인 전 대표, 박지원 의원 등 선거운동을 이끌 수 있는 중량감 있는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당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당된 후 나설 사람이 없다. 물론 더민주에는 김종인 대표와 문 전 대표가 있고 국민의당에도 안 대표와 천정배 대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박 의원 등이 있기는 하다.
◇김종인, 문재인 활동 자제 경고… 새누리당은 김무성 오세훈 등 즐비 = 문제는 이들이 모두 발이 묶여 있는 처지라는 점이다. 문 전 대표는 탈당사태와 분당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난 후 경남 양산에 머물고 있다. 아직 공개석상에 나설 입장이 아니다.
김 대표는 9일 기자들과 만나 선거지원에 나설려는 문 전 대표를 향해 “조급하게 생각하면 안철수 처럼 된다. 조급한 정치인은 성공하지 못한다”며 “문 전 대표도 사람이니까 돌아다녀야겠지만 공식적으로 ‘나 어디 가겠다’며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좀 더 자숙하라는 얘기다. 이 발언을 전해들은 문 전 대표는 10일 충북 청주에 열리는 ‘더더더 정책토크콘서트’ 참석을 취소했다. 대표직 사퇴 후 총선 후보자들과 함께하는 첫 공식 일정이었다.
안 대표도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다시 서울 노원병 출마를 선언한 안 대표는 이준석 새누리당 후보와 버거운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후보자 등록 후 선거운동에 들어가면 쉽게 지역구를 떠나 전국을 다닐 상황이 아니다. 광주 서구을에 출마하는 천 대표도 광주 밖을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더민주가 전략공천한 삼성전자 상무 출신의 양향자 후보가 만만치 않은 상대인 것이다. 무명의 정치 신인인 양 후보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30%를 넘는 지지도를 받았다는 사실은 천 대표에게 긴장감을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정 전 장관과 박 의원도 선거구인 전주와 목포를 떠날 수 없다. 19대 총선과 달리 호남에서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팽팽하게 경쟁하는 상황이라, 지역구를 비우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대선주자인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안희정 충남지사에게 손을 내밀 수도 없다. 현직 광역단체장인 관계로 선거운동에 개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새누리당이 대선주자 선호도 1·2위를 다투는 김무성 대표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 유승민 의원 등이 선거운동의 전면에 나서 지지를 호소할 수 있는 것과는 천양지차다.
◇손학규 대안론 나와… 더민주도 손 전 대표 구원등판 고민 = 손 전 대표 구원등판론·대안론이 나오는 이유다. 야권 관계자는 “더민주와 국민의당으로 분열된 데다 선거운동도 이끌 사람이 없다면 선거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며 “더민주는 김종인 대표 중심으로 선거운동을 계획하고 있는데, 김 대표가 대중적인 친화력이나 흡인력이 없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결국 손 전 대표가 복귀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내다봤다.
다만 걸림돌이 있다. 2년 가까이 전남 강진에서 칩거중인 손 전 대표가 나올려면 명분이 있어야 한다. 개헌 저지선 확보와 새누리당 압승 저지라는 목표가 있다고 하더라도, 정치적인 공간이 없으면 복귀하기가 어렵다. 손 전 대표와 가까운 전·현직 의원들이 더민주와 국민의당에 흩어져 있는 조건에서 어느 한쪽만을 지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만약 야권연대가 이뤄지고 야권이 공동 선거대책위원회를 구성한다면 손 전 대표에게도 여지가 생길 수 있다.
손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지금은 움직일 수 없다. 대표도 개헌선 저지에는 동의하고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 상태에서는 안된다. (야권연대로 공동 선대위가 구성되는 등) 그렇게 된다면 몰라도 괜히 나와서 책임만 뒤집어 쓸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더민주는 손 전 대표를 고려중이지만 아직은 김 대표 체제로 선거를 치르자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민주 관계자는 “일단 공식적으로 당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거지. 대표 중심으로 하고 문 전 대표가 개별적으로 알아서 다니는 정도다. 손 전 대표가 안 움직이는 걸 어떻게 하겠느냐”며 “(당 차원에서) 강진으로 내려가 복귀를 요청하는 것도 있긴 하지만 아직은 현 체제로 가자는 생각이 강하다”고 전했다.
손 전 대표는 지난 2014년 7월 정계를 은퇴하며 상임고문 자리를 그만뒀지만 당원 신분은 그대로 유지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