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반도체의 스위스' ARM 인수 나설까…시나리오 셋[뉴스분석]

by김상윤 기자
2022.09.20 17:51:38

①삼성전자 단독 인수 나서면 독과점 벽에 막혀
②전략적 투자자와 컨소시엄 구성해 공동인수
③ARM과 기술제휴 강화하거나 타 팹리스 인수

[이데일리 김상윤 이다원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영국을 찾으면서 ‘반도체 업계의 스위스’로 불리는 반도체 설계회사 ARM 인수 여부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저전력 프로세서의 핵심인 아키텍처(프로세서 작동 언어)를 만드는 회사를 수직계열화하면서 ‘2030 시스템반도체 1위’ 목표에 한 걸음 다가설 것이라는 기대이지만, 반독점 문제가 발목을 잡히면서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1990년 영국에서 설립한 ARM은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계의 팹리스’라고 불린다. 삼성전자, 애플, 퀄컴, 애플, 화웨이, 미디어텍 등 세계 1000여 기업에 반도체 기본 설계도인 아키텍처를 만들어 제공하고 사용료(로열티)를 받고 있다. 무겁고 전력 사용이 많은 인텔의 아키텍처에 비해 작고 효율적인 프로세서를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팹리스 업체들이 ARM을 인수를 노리는 이유는 수직계열화를 통한 효율성 증대다. ARM의 아키텍처를 독점적으로 이용해 로열티를 따로 지불하지 않으면서 보다 효율이 뛰어난 프로세서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ARM은 모든 반도체 제조업체들과 똑같은 조건으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중립국이라는 의미에서 반도체 업계의 ‘스위스’라고 불린 이유다.

하지만 삼성이 단독으로 ARM을 인수하면 경쟁 팹리스업체로서는 라이선스 로열티가 올라가거나 자칫 라이선스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통상 계열사 간 시너지를 끌어올리는 수직 결합에 대해서는 대체로 경쟁당국이 허용해 왔다. 그러나 특정 기업의 ARM 인수로 다른 경쟁업체 간 거래가 차단되는 ‘봉쇄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면 기업결합이 불가능하다. 지난해 그래픽 전문 팹리스인 엔비디아의 ARM 인수가 막힌 배경이다. 삼성전자가 효율성 증대 효과에도, 단독으로 ARM을 인수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삼성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다른 전략적 투자자(SI)와 컨소시엄을 꾸려 공동인수에 나서는 방식이다. 경쟁당국의 독과점 심사를 피할 수 있는 방안이다. 그러나 단독 인수에 비해 효율성 증대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M&A 심사를 통과하더라도 라이선스를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 조건(FRAND)으로 경쟁사에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주주가 있는 탓에 ARM의 핵심기술을 끌어오기도 어렵다.

ARM 지분 인수에 관심을 보여온 팻 겔싱어 인텔 CEO가 지난 5월 이재용 부회장과 서울에서 만났을 때 삼성전자와 인텔 간 협업이 제기됐지만, 쉽지 않을 전망이다. ARM의 아키텍처와 인텔의 아키텍처가 합쳐지면 수직결합의 봉쇄효과를 넘어 아키텍처 수평결합에 의한 독과점까지 불거질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오히려 ARM의 아키텍처를 이용하고 있지 않은 차량용 반도체 팹리스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한다면 상대적으로 독과점 우려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좌)과 펫 겔싱어 인텔 CEO
ARM 기술 기반의 프로세서 시장 점유율은 90%에 달하는 만큼 매물이 나왔을 때 가치는 50조원까지 치솟았다. 당시만 해도 경쟁당국의 독과점 심사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매물 가치를 높였다.

하지만 제한적인 공동인수 방식만 가능한 상황에서 팹리스업체들의 관심도 상대적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삼성전자 역시 애초 기대했던 효율성 증대 효과가 상당수 사라진 상황에서 ARM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도 상당히 낮아졌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이주완 포스코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ARM은 매력적인 회사이지만 인수 시 독과점 문제 때문에 공동인수에 나서야 하고 그러다 보면 실익이 줄어들기 때문에 인수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며 “오히려 기존처럼 라이선스 로열티를 내면서 기술제휴를 강화하거나 다른 팹리스 업체를 인수 하는 게 나을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