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공법 or 출구전략…檢, 이재용 영장청구 해석 분분

by이성기 기자
2020.06.04 16:42:02

수사심의위 요청 하룻만 윤석열 총장, 청구 의견 재가
대검 "삼성 측 요청 결정 고려대상 아냐" 선그어
"삼성 측 악수(惡手) vs 불가피한 `출구전략` "

[이데일리 이성기 기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의혹 수사 막바지에 검찰이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을 두고 법조계에서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 측이 검찰에 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 소집을 요청한 것에 대한 반작용이란 의견과 국내 1위 기업과 총수를 상대로 1년 8개월여 수사를 끌어온 만큼, 검찰 입장에서 영장청구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견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관련 수사의 시발점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의 고발이다. 증선위는 옛 제일모직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가 2015년 말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의 회계처리 기준을 바꿀 때 고의적 분식회계가 있었다고 보고 2018년 11월 검찰에 고발했다. 이를 계기로 정식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이듬해 9월 삼성물산 등지를 압수수색하며 합병 의혹으로 수사를 확대했다.

그간 50여 차례의 압수수색과 삼성 전·현직 임직원 110여명에 대한 소환 조사 등을 통해 혐의 입증에 주력해 온 검찰은 수사 막바지에 이르러 의혹의 정점인 이 부회장을 소환 조사했다.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이 부회장은 지난달 26일과 29일 비공개로 나와 조사를 받았다. 조서 열람을 포함해 각각 17시간, 17시간 30분가량의 강도 높은 조사가 이뤄졌다. 이 부회장은 조사 당시 제기된 의혹에 대해 “보고 받거나 지시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무게추가 기소 방침으로 기운 것으로 판단한 이 부회장 측은 지난 2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 수사심의위 소집을 요청했다. 이 부회장 측은 “수사가 사실상 종결된 시점에서 검찰이 구성하고 있는 범죄 혐의를 도저히 수긍할 수 없어 국민의 시각에서 수사의 계속 여부 및 기소 여부를 심의해 달라고 심의 신청을 접수한 것”이라고 밝혔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 부회장 등의 구속영장 청구를 재가한 것은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 하룻만인 3일. 대검 측은 “서울중앙지검에서 구속영장 청구 의견서가 올라와 총장이 재가한 것”이라면서 “의견서가 올라온 날짜 등은 알려줄 수 없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선 삼성 측의 `마지막 카드`가 되레 악수(惡手)가 된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영장청구 등 사법처리 방향을 고심 중이던 검찰의 화를 돋군 셈이란 얘기다.

그러나 삼성 측의 수사심의위 소집 요청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는 게 대검 공식 입장이다. 대검 관계자는 “내부 절차상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이미 (영장청구) 방침은 세워진 상태였다”고 선을 그었다.

이 부회장 측의 태도가 검찰의 결심을 앞당겼을 것이란 견해도 만만찮다.

고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수사심의위 소집 카드가 영장청구 결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면서도 “장기간 고강도 수사를 이어온 온 검찰로서 영장청구를 하지 않는다면 그에 따르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분식회계 사건 `지류`인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된 임직원 8명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상황에서, 본류인 혐의로 영장을 청구하지 않는 것은 `난센스`란 것이다.

이 변호사는 “영장심사 결과와는 별개로 수사심의위 절차를 진행하는 만큼, 일종의 `출구전략`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