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발 안 먹히는 가상화폐 규제..투심 못 읽고 규제만 내놓는 당국(종합)
by문승관 기자
2018.01.08 19:44:00
최종구 "은행 통한 가상화폐 거래...불법자금 세탁 방조·조장 우려돼"
전문가 "가상화폐=불법 단순 규정...''막차'' 타려는 투기자본 몰릴 수도"
|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상통화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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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문승관 기자] ‘2495만5000원 vs 4182원’
8일 오후 3시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서 살 수 있는 비트코인과 리플의 원화 가격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이날 오후 2시에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어 7번째 가상화폐 규제책을 내놓은 지 1시간 후다. 비트코인은 1시간 만에 2.89%가 올랐고 리플도 소폭 오름세로 돌아섰다.
정부의 잇따른 가상화폐(암호화폐) 시장 안정 대책에도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오히려 더 뜨거워진다. 정부가 이날 시장을 잡기 위해 크게 두 가지 규제책을 내놓았다. 하나는 가상화폐 취급업소에 가상계좌를 제공하고 있는 은행에 대한 현장 점검과 가상화폐 관련 자금세탁방지 업무 가이드라인 제정이다.
불법적인 거래에 대해서는 ‘철퇴’를 내리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지난해 12월28일 이후 시장에 다시 한번 강력한 규제 의지를 보인 것이다. 그럼에도 규제의 역설을 방증하듯 시장은 규제를 오히려 제도권 편입의 절차로 인정하듯 가격이 올랐다. 시장과 전문가들은 가상화폐를 단순히 불법화로 규정한다고 실질적인 효과를 얻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최 위원장은 이날 “가상통화 거래가 실명확인이 어려운 은행 가상계좌 서비스를 이용해 이뤄지고 있다”며 “범죄·불법 자금 유통을 방지해야 할 은행이 이를 방조하고 조장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가 증가하고 있다”고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이어 “가상통화 거래는 익명성과 비대면성으로 범죄·불법 자금 은닉 등 자금세탁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번에 현장점검에서 은행들이 가상통화 취급업자와 거래에서 위험도에 상응하는 수준의 조치를 했는지 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융당국이 겨냥하는 세력은 일반 투자자가 아니다. 법인계좌를 활용해 해외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사서 국내 거래소에서 비싸게 팔아 차익을 챙기는 ‘환치기’ 업체와 마약·도박 등 불법 거래에 쓰인 자금을 비트코인을 통해 세탁하는 업자 등을 겨냥했다.
금융당국은 통신사업자로 신고해 운영되고 있는 가상화폐 거래소를 직접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그럼에도 가상계좌를 발급해준 은행의 의무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것은 불법행위 처벌에 대한 의지를 가상화폐시장에 다시금 상기시켜주기 위한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최 위원장은 “한국에서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이라 불릴 정도로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큰 열풍이 불고 있는 이유는 규제 미비뿐만 아니라 다른 요인들도 작용한다고 본다”며 “한국이 더는 이러한 비정상적인 거래를 주도하는 시장이 되도록 방치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의지를 뒷받침한다. 그는 “불법이 확인된 은행은 가상계좌서비스 제공을 중단시켜서 가상계좌 거래를 어렵게 만들 것”이라며 “취급업소에 대한 직접 규제는 아니지만 이로써 사실상 거래를 차단하거나 봉쇄하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상화폐 취급업소에 대한 점검은 법적 근거가 분명하지 않은데, (이번 점검을 통해) 여러 불법행위에 대한 형사적인 조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가상통화 취급업소 폐쇄 등을 포함한 모든 가능한 대안을 검토하고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카드도 꺼내들 태세다. 가상화폐의 가격 변동성이 투기적 성격을 갖는 데다 거래소의 보안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에서 규정하는 화폐가 아닌 만큼 정부의 규제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본격적으로 규제를 시작하면 투자 심리가 다소 주춤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제 움직임 때문에 오히려 ‘막차’를 타기 위한 투기 자본이 더욱 몰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마지막 ‘인생 역전’의 기회로 여기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정부는 세금을 통해 시장을 잡겠다는 심산이다. 계좌 실명 전환도 과세를 위한 사전 포석이다. 암호화폐 특성상 거래 이력 추적이 어렵지만 실명 계좌라면 암호화폐를 현금화하는 순간 과세 당국이 포착할 수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물론이고 투자자 중에서도 전문 투자세력이 계속적이며 반복적으로 투자했다면 당국은 이를 사업소득으로 보고 과세할 수 있다. 다만 개인 투자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등 과세는 입법 과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정부는 그래도 시장이 안정되지 않으면 1인당 암호화폐 거래 한도를 설정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했다.
문홍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중앙은행과 정부는 자체 통화에 대한 추가 발행 권한과 통제권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당연히 가상화폐를 불법화할 것”이라며 “중앙정부의 규제 움직임은 가상화폐의 가치가 일정 수준 이상일 개연성을 만들어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동시에 거래를 금지하지 않는 이상 거래가 가능한 다른 나라 통화로 환전한 후 이를 다시 우리나라 통화로 환전하면 된다”며 “설사 모든 나라가 금지해도 환전할 수 있는 암시장이 존재할 수도 있다. 가상화폐가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중요한 이유”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