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기다린 짧은 만남…이산가족 문제 근본적 해결 시급

by장영은 기자
2015.10.26 17:25:32

7박8일간의 이산상봉 행사 종료…기약없는 이별에 가족들 망연자실
전면적 생사확인·서신교환·상봉정례화 등 남은 과제
남북적십자 본회담·당국회담 통한 협상에 쏠리는 '기대'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26일 금강산호텔 2층 연회장. 작별상봉을 마치고 남측 가족이 떠날 시간이 되자 주재은(72·북측)씨는 일어서 가만히 동생을 바라보다 부둥켜 안으며 “건강하게 살아라”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형 품에 안긴 동생 주재희 할아버지(71)는 아이로 돌아간 듯 “형, 마지막이 아니야, 이건 시작이야 형”이라며 얼굴을 파묻었다.

이날 오전 작별행사를 끝으로 7박8일 동안 2회차에 걸쳐 치러진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끝이 났다. 1차에서는 북측 가족(96가족, 141명)이 찾는 남측 가족(389명)과 만났고, 2차에서는 남측 가족(90가족, 254명)이 찾는 북측 가족들(188명)을 상봉했다.

우리측 가족들은 방북에 앞서 하루 전 속초에 집결해 등록절차와 방북 교육을 받았다. 이산상봉 행사는 1, 2차 각각 2박 3일씩, 사전 절차에 하루씩이 소요돼 총 7박 8일간의 일정이 이어졌다.

그러나 주재희 할아버지의 말처럼 이번 상봉행사는 마침표를 찍었지만 앞으로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을 위한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26일 강원 고성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0차 남북이산가족상봉 2차 작별상봉행사에서 이금석 할머니가 북측의 아들 한송일 씨와 눈믈을 흘리며 헤어지기 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가족들은 처음에는 상봉의 기쁨에 기자들에게까지 “고맙다”라는 말을 전할 정도로 들 떠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헤어짐의 순간을 걱정하며 마음이 무거운 모습이었다. 특히 2차 상봉단의 경우 1차 방문단이 작별하는 모습을 봐서인지 가기 전부터 상봉 시간이 너무 짧다면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앞서 1차 상봉 때 남측 조카들을 만난 북측 한순녀(여·82)씨는 “이렇게 몇 시간씩 끊어서 상봉할 게 아니라 방에서 이틀 정도 같이 자고 그래야 서로 이야기도 오래 하고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2차 방문단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북측의 오빠를 만나러 온 한정자씨(72)씨는 “어머니께서 ‘하룻밤이라도 (오빠와) 한방에서 같이 잘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라면서 많이 아쉬워 하셨다”고 전했다.

생사를 확인한 이상 인도적인 차원에서라도 이후 서신교환이나 상봉을 상시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아버지를 모시고 북측의 형을 만난 배상석(60)씨는 26일 작별상봉장에서 “만나게 해주세요! 서로 편지 주고받게 해주세요!”라고 흥분해서 외치기도 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오히려 어떤 분들은 ‘안 본 것이 더 좋았지 않느냐’라고까지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는 건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라며 “상봉 이후 희망이 없다며 울화증 등 후유증을 앓는 경우도 상당수”라고 설명했다.



이번 상봉을 계기로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 방안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우리측 상봉단의 경우 상봉 당사자 중 80세 이상이 무려 90%에 육박한다.

지난 9월 말 기준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등록된 이산가족찾기 신청자는 13만 409명으로 이 가운데 생존자는 6만 6488명, 사망자는 6만 3921명으로 집계됐다. 곧 상봉만을 기다리다 숨진 신청자가 생존해 있는 사람보다 더 많아진다는 뜻이다.

이산가족 생존자 가운데 90세 이상은 7781명(11.7%), 80대가 2만 8063명(42.2%)으로 80대 이상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들의 경우 불과 10년만 지나도 사망이나 건강 문제 등으로 상봉 기회 자체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외금강호텔에서 일하는 북측 접대원은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여러번 치렀는데 점점 (상봉단의) 연세가 많아지는 것이 느껴진다”며 “돌아가시기 전에 어서 이런 행사가 많이 열려야 하는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따라 상봉행사의 동력을 이어 적십자 본회담과 당국회담 테이블에서 이산가족 상봉 문제 등을 비롯해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현안들을 논의할 수 있을지 여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리충복 북한 적십자중앙위원회 위원장도 24일 “상봉 행사가 끝나면 (남측과) 상시 접촉 문제와 편지 교환 문제 등 이산가족 관련 문제들을 협의할 생각”이라며 남북 협의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도 이산가족 전원 생사 확인을 지시하는 등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에 팔을 걷어부친 만큼, 향후 당국간 대화 채널을 통해 생사 확인, 상봉 정례화, 서신교환 등이 비중 있게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

통일부 당국자는 “8·25합의에서 양측이 합의했던 당국간 회담이 열릴 경우 이산가족 문제 해결 등도 다뤄지고 교류 회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겠느냐”며 “최근 북측에서 8·25 합의를 6·15 공동선언만큼이나 비중을 두고 언급하고 있는 만큼 그 첫번째 합의 사항에 대해서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라고 봤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남북 모두 8·25 합의 이행 의지가 있고 이산가족 행사도 양측의 협조가 잘 돼 치뤄진 만큼 남북 당국간 회담 가능성이 높다”면서 “12월은 남북 모두 결산하는 시기인 만큼 다음달 중에 당국간 회담이나 사전 예비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