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의 함정'에 빠진 한은…금리 3.5% 버티는 것도 능력

by최정희 기자
2023.07.13 19:02:00

부동산PF부실 우려 속 가계부채 증가
3.75% 가능성으로 '매파'로 보이고 싶지만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 제한…정책 여력 부족
가계부채 늘리는 정부 대책…"미시적으로 자금시장 물꼬 터준다"
'금리 인하 시점 뒤로 밀릴 수 있다' 전망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출처: 한은)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3일 금통위원 만장일치로 7월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전원이 금리를 3.75%로 인상할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데 동의했다. 결과만 보면 5월 금통위 때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내용을 뜯어보면 금통위의 속내는 상당히 복잡해졌다.

이 총재가 작년 4월 취임한 이후 금리 결정 변수로 처음으로 ‘가계부채’를 제시했음에도 금통위는 금리를 동결하는 것 외에 사실상 금리 인상 여력이 없음을 드러냈다. 이 총재는 5월까지만 해도 “금리 인상 못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날은 이같은 단호함이 없었다. 역전세, 새마을금고 뱅크런 등 또 다른 금융불안이 엄습한 상황에서 가계부채를 늘릴 수 있는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 상당 부분 공감했다.

기준금리 연 3.5% 체제에서 가계부채 증가와 함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우려로 인한 금융불안이 동시에 불거지고 있다. 금리 3.5%가 가계부채를 줄이기엔 너무 낮은 금리인지, 아니면 금융불안을 자극할 정도의 높은 금리인지 자체가 의문이다. 금리가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이 총재는 두 가지 요인 중 가계부채 증가에 더 큰 우려를 표했지만 금융불안을 완화하는 과제도 비중있게 언급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가계부채 감소를 통화정책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로 대응하겠다”며 “가계부채가 크게 증가한다면 금리 뿐 아니라 거시건전성 규제 강화 등을 통해 대응할 수 있는 옵션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중장기적으로 명목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80% 수준으로 내려갔으면 좋겠다”면서도 “단기적으로 급격하게 조정하면 부동산 PF, 역전세난, 새마을 금고 (뱅크런) 등의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크게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21년 9월말 105.7%였던 가계부채 비율은 추세 하락해 올 3월말에는 103.4%로 낮아졌다. 금융권 가계대출은 작년 3분기부터 올 1분기까지 전기대비 감소세를 보이면서 금리 인상이 가계대출 누증 위험을 낮춰주는 듯 보였다. 하지만 4월부터 석 달 연속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증가하면서 가계부채비율도 다시 상승할 위험이 커졌다. 6월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은 7조원 급증, 2004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2015년 4월(8조원) △2020년 2월(7조8000억원)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이 늘었다.

정부가 대대적인 부동산 규제 완화책을 펴고 있는데다 특례보금자리론 등으로 대출 규제까지 완화한 영향이 크다. 이에 전국 아파트 거래 건수는 5월 7만건으로 작년 4월(7만5000건) 이후 가장 많았고, 서울 아파트 가격 하락세도 멈췄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역전세에 대응, 전세보증금 반환을 위해 집주인에게 대출 규제를 완화한 대책을 추진하고 있어 가계대출이 더 증가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 총재는 “역전세 대응이 가계부채를 늘리는 쪽으로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시 정책으로 자금 시장의 물꼬를 터줄 필요가 있어서 하는 정책이라 그 자체가 통화정책과 상충되지 않는다”며 “다만 그로 인해 가계부채 비율이 올라가면 과도한 정책 대응으로 보이는데 아직 이를 판단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가계대출은 고금리보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영향을 더 크게 받으면서 증가하는 반면, 부동산 PF 부실 우려는 규제 완화보다 고금리에 더 크게 반응하면서 금융불안을 반복하고 있다.

작년 하반기 레고랜드 부도 사태 이후 불거진 단기금융시장 유동성 위축이나 최근 새마을금고 뱅크런 사태의 기초에는 부동산 PF 부실 우려가 있고 그 바탕에는 고금리가 있다. 최근에는 국고채 및 91일물 CD금리가 3.7% 안팎에서 움직였는데 현 기준금리 3.5%를 고려하면 크게 튀는 수준이 아님에도 새마을금고 뱅크런 등 금융불안이 재개되면서 금리 3.5%를 현재 금융시장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인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일고 있다.

한은으로선 물가안정에 대응한 통화정책 파급효과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시장금리를 기준금리 3.5%보다 높게 유지하면 ‘금융불안’이 생기고 시장금리 역전을 허용하면 물가안정에 대한 의지가 약한 것으로 비칠 수 있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 셈이다.

금리 인상도, 인하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한은이 ‘매파’적으로 보여야 할 이유들도 아직 중첩돼 있다. 물가상승률이 6월 2.7%로 내려앉고 7월에도 2%대를 보일 전망이지만 8월 이후엔 다시 올라 연말 3% 내외로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 수요, 누적된 비용 인상 압력 등에 식료품 및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 전망치도 3.3%에서 상향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 경기 회복세 약화에도 미국의 견조한 경기와 반도체 수출 물량 회복으로 경제성장률은 5월 제시한 대로 1.4%로 전망된다.

이런 가운데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이 아직 종료되지 않았다는 부담감도 크다. 이 총재는 “외환시장이 불안해지면 당연히 금리를 올릴 수 있을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밝혔다. 가계부채에 대해서도 “정부가 거시건전성 정책을 통해 노력하겠지만 갑자기 너무 늘어나면 금리 인상을 옵션으로 놔둬야 한다는 게 대부분의 금통위원들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박석길 JP모건 금융시장운용부 본부장은 “한은은 내년 1분기까지 금리를 3.5%로 유지하다가 2분기부터 2% 중반의 중립 범위로 인하할 것”이라며 “금통위의 매파 성향으로 금리 인하 시기가 몇 달 더 지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진욱 씨티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금리 인하가 10~11월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을 11월로 연기하겠다”며 “한은의 가계부채 관리가 장기적으로 금리 인하 시점을 늦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