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용 '호미', 한은 총재 집무실에 떡 하니…왜?

by장영은 기자
2026.09.29 11:39:18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한국은행 총재 집무실에 최근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 하나 자리를 잡았다. 주로 논이나 밭을 매는 데 쓰이는 호미다.

한국은행 총재가 1987년 신축 본관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업무를 수행했던 집무실. (사진= 화폐박물관)
서울 도심 한 복판, 책과 서류가 빼곡한 한은 총재 집무실에 호미가 등장하게 된 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한은은 지난 7월에 이어 8월에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해 연 3.00%로 끌어올렸다. 동결에서 인상기조로 전환한 뒤 한 달만에 또 올린 연속 인상으로, 커다란 대내외 충격이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행보였다. 신현송 한은 총재도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상당히 관례에서 벗어난 조치”라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우리 속담을 하나 꺼냈다. 신 총재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표현이 있다”며, 지난달 연속 인상 결정이 가래 대신 호미로 대응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설명한 것이다. 뜻은 간단하다. 작은 문제일 때 손보면 호미 한 자루로 끝날 일이, 방치하면 가래질 수준의 큰 공사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전통 농기구인 호미. (사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속담을 통화정책에 적용하면 이렇다. 물가 오름세가 퍼지기 전에 조기에 금리를 올리면 물가 상승과 직결되는 기대인플레이션을 빨리 안정시킬 수 있다. 대응이 늦어졌을 때에 비해 필요한 긴축의 강도와 기간이 줄고, 성장에 주는 부담도 덜하다. 신 총재는 “뒤늦게 대응해 가래로 막게 되면 그만큼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한다”면서 “저희는 이번에는 호미로 제때 대응하겠다”고 했다. 그는 간담회에서 ‘선제’, ‘조기’ 같은 표현을 되풀이하며 이 논리를 강조했다.



배경에는 반도체 호황이 있다. 수출 호조로 소득이 늘고 기업 이익이 가계 소비로 번지는 초기 신호가 미시 데이터에서 확인된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이 흐름이 강해지면 근원물가를 중심으로 한 물가 상승세가 강하고 길게 이어질 수 있다. 집값 상승에 따른 가계부채 불안과 원·달러 환율 안정도 고려 대상이었다.

호미는 신 총재의 통화정책 철학을 상징하는 말이 됐다. 사후 수습보다 사전 예방을 중시하고, 통화정책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관례도 깰 수 있다는 결단력 있는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한은의 정책 결정을 해당 속담에 비유해 설명하기로 한 것도 신 총재의 생각이었다.

현재로선 한은의 연속 인상이 시의적절한 판단이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8월 금통위 이후 국제유가 재상승, 2분기 총국민소득 급증, 미국 연방준비제도 등 주요국 긴축 등의 상황이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서다.

신 총재가 집무실에 굳이 호미를 둔 속내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현 상황에서 시사하는 바는 작지 않다. ‘가래 대신 호미로 막을 수 있을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일종의 경계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비단 통화정책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 경제는 초양극화를 완화하고 반도체 훈풍 이후를 대비해야 하는 중요한 지점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