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강제추행’ 하일지 前 교수, 1심서 집유…“피해자 진술 인정”

by박순엽 기자
2020.10.08 15:43:58

서울북부지법, 하일지 전 교수, 징역1년·집유2년 선고
“피해자 진술 일관되고 구체적…진술 배척하기 어려워”
‘범행 인정 않고, 범행 후 정황 좋지 않아’…양형 고려

[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하일지(본명 임종주) 전 동덕여대 교수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하 교수는 그동안 혐의를 부인해왔지만, 법원은 피해자 진술을 인정해 유죄로 판단했다.

지난 2018년 3월 하일지 당시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동덕여대 100주년기념관에서 자신의 미투 폄하 논란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기 전 학생들의 사과 요구 발언에 웃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북부지법 형사9단독 이미경 판사는 8일 강제 추행 혐의로 기소된 하 전 교수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또 하 전 교수에게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강의 수강과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 복지시설에 3년간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앞서 하 전 교수는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던 지난 2015년 12월 10일 제자 A씨에게 입을 맞추는 등 상대의 동의 없이 신체 접촉한 혐의로 2018년 12월 불구속 기소됐다.

하 전 교수 측은 기소 이후 신체적 접촉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강제성은 없었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했다. 변호인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고, 대화와 행동을 종합하면 입맞춤에 묵시적으로 동의했다”면서 “강제력과 무력을 행사하지 않았기에 강제 추행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피해자가 사건 이후 ‘이성적 마음이 없던 것은 아니다’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낸 점을 토대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했다.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이면서 비합리적이거나 모순되는 부분이 없다”며 “피해자의 남자친구도 사건 당일 피해자를 만나 ‘하 전 교수에게 강제 추행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진술했고, 피해자 지도교수도 피해자가 연구실로 찾아와 하 전 교수로부터 성추행당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진술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 “하 전 교수는 사건 이후 피해자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다신 안 그러겠다’고 말했는데, 이는 묵시적 승낙 아래 입맞춤했다는 하 전 교수 주장과 들어맞지 않는다”고도 지적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교수와 학생이라는 점도 고려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하 전 교수의 지위를 고려하면 사건 직후엔 피해자에겐 문제를 제기해야겠다는 욕구보다 사건을 없던 일로 생각하고 학교나 문단에서 원만하게 생활해야겠다는 욕구가 더 컸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서 “즉시 문제 제기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피해자 진술을 배척하긴 어렵다”고 봤다.

또 재판부는 사건 이후 피해자가 하 전 교수와 여러 차례 연락하고 이메일을 보낸 점도 “작가이자 교수님으로서 존경하는 하 전 교수에게 제자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과 성추행 피해자로서 가해자를 원망하는 마음은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이메일 내용만으로 피해자가 범행 당시에 이성적 감정을 가지고 입맞춤을 허락했다고 추단할 수 없고,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할 수 없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이번 범행으로 피해자가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지만, 하 전 교수는 입맞춤을 ‘교수가 제자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애정표현’이라고 주장하는 등 범행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범행 이후에도 피해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자가 쓴 이메일 내용을 일방적으로 배포하는 등 범행 후 정황도 좋지 않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추행이 1회에 그쳤고 초범인 점과 19년간 재직해온 동덕여대에서 사직한 점도 하 전 교수의 양형을 책정하는 데 고려했다고 밝혔다.

하 전 교수의 성추행 혐의는 지난 2018년 3월 A씨가 피해 사실을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하 전 교수는 A씨 폭로가 거짓이라며 A씨를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및 협박으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논란이 불거진 이후 직위 해제됐던 하 전 교수는 올해 9월 1일 동덕여대에서 정년퇴직했다.

한편 A씨는 1심 선고 이후 “마냥 기쁘지만은 않지만, 과거의 날들보다는 더 나은 기분”이라면서 “이번 선고가 다른 피해자들이 용기가 내는 계기가 되고, 소송 중인 분들이 위로를 느낄 수 있는 사례가 되길 바란다”고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