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혁신” vs “시기상조”…불붙은 국제바칼로레아 도입 논란

by신하영 기자
2019.05.28 17:26:13

스위스에 본부 둔 교육재단이 만든 국제표준 교육과정
대구·제주 도입 코앞…“토론·논술평가로 창의인재 양성”
교육계 찬반 논란…“한국형 논술교육과정 개발해야”
“일부 명문대 IB전형 도입 시 사교육·양극화” 우려

사진=이미지투데이


[이데일리 신하영·신중섭 기자] 학교 시험이 서술형·논술형 평가로 바뀌는 국제 바칼로레아(IB) 도입을 앞두고 교육계에서 찬반 논란이 본격화 하고 있다.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와 창의력을 높이는데 필요한 교육혁신이란 평가와 함께 국내 교육현실과 맞지 않아 부작용이 생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IB(국제 바칼로레아) 국내 도입에 대한 종합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신동진 사교육걱정 책임연구원은 “현재의 수능 체제를 그대로 두고 IB 도입 학교를 확산시키면 새로운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IB는 스위스에 본부를 둔 비영리교육재단 IBO(International Baccalaureate Organization)가 개발, 운영하는 국제 표준 교육과정이다. 원래는 모국이 아닌 타국에 채류 중인 외교관이나 해외상사 주재원 자녀들을 위해 1968년 처음 만들어졌다. 어디서나 균질적 교육을 받도록 해 이들의 학력인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기준 전 세계 153개국이 IB를 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1개교가 운영 중이며 대부분 국제학교나 외국인학교다.

IB 도입 논란의 단초를 제공한 곳은 대구와 제주다. 대구·제주교육감은 지난 17일 IB교육과정을 한글로 변역하기로 IBO와 협약을 맺었다. 대구는 이를 통해 오는 2021년까지 초등학교와 중학교 각 3곳에 IB를 도입하며, 2022년에는 고등학교 3곳으로 이를 확대한다. 제주는 올해 말까지 고등학교 한 곳을 지정해 IB교육과정을 시범 운영하기로 했다.

IB를 도입할 경우 교육과정·수업·평가 등이 모두 토론·논술형으로 바뀌게 된다. 이 때문에 국내 교육과정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기대와 교육실험에 따른 부작용이 클 것이란 우려가 교차한다. 자신의 저서 ‘대한민국의 시험’에서 IB 도입 필요성을 강조한 이혜정 교육과혁신 소장은 “IB는 4차 산업혁명·인공지능 시대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선진화된 교육과정”이라고 평가했다.



학계에서도 IB과정이 사고력을 키우는데 초점을 맞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역사교육을 예로 들면 지금까진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순서를 맞추는 문제가 출제됐다면 IB과정에선 이에 대한 의미를 서술토록 하는 문제가 출제된다. 대구·제주교육감들도 이러한 논·서술형 평가가 사고력과 창의력을 기르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국내 교육현실과 맞지 않다는 점이다. 전경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연구소장은 “우리나라 내신·수능 평가는 1~9등급 상대평가인데 IB는 절대평가로 서로 맞지 않다”며 “IB도입 학교는 절대평가를 허용하고 그렇지 않은 학교는 상대평가를 유지할 경우 혼란이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IB도입이 또 다른 사교육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IB가 일반적이지 않은 전형자료가 된다면 IB과정을 이수한 학생들만 입시에서 선점효과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명문대만 IB선발전형을 운영할 경우 이를 이수한 학생만 특혜를 보게 되고, 여기에 진입하기 위한 사교육 경쟁이 심화될 것이란 우려다. 신동진 사걱세 책임연구원도 “IB를 적용하는 부유층 사립학교들이 늘어나고 서울대 등이 대입에서 IB 이수를 우대할 경우 새로운 양극화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계에선 굳이 외국의 교육과정을 수입할 필요가 있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토론식 수업과 논·서술형 평가가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국내 현실에 맞는 교육과정을 만들자는 제안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한국의 가장 큰 강점은 한글이며 오히려 우리 교육은 한글을 살리는 쪽으로 가야하기에 굳이 외국의 교육과정을 번역해 쓸 필요가 없다”며 “대입제도나 교육과정을 바꾼다면 우리나라에 맞는 논술형 교육과정을 개발하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이어 “교육청들은 IB에 돈을 쓰는 것이 과연 공교육 취지에 부합하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IB과정을 운영하려는 학교는 스위스 IB 본부에 매년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사걱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IB과정을 도입하는 학교는 매년 고정 지출비용 3400만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