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이노·E&S 합병비율 1:1.19…E&S 투자한 KKR 설득 과제

by김성진 기자
2024.07.17 18:10:09

SK이노·E&S 합병 자산 106조 기업 탄생
2030년 EBITDA 20조 달성 목표
전기차 캐즘·에너지·화학 불확실성 돌파
최종현 선대회장 “혁신 종합에너지 기업 돼야”
42년 전 미래 내다봤다

[이데일리 김성진 기자] “단언컨대 유공이 60년이 되는 해쯤이 되면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이 돼 있을 것이다.”(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

선경그룹(현 SK)이 국영기업이던 대한석유공사(SK이노베이션의 전신)를 인수한 지 약 2년 뒤인 1982년 12월 9일.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은 과장급 이상 간부들을 모아 간담회를 실시하고 이렇게 말했다. 1962년 설립 이후 지난 20년간 정유사업에 치중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해 종합에너지 기업으로 키우기 위한 계획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최 선대회장은 이 자리에서 “유공은 지금 석유정제를 하고 있지만 공해 문제가 뒤따르고 있어 빨리 방향을 바꿔야 한다”며 “석탄, 가스, 전기, 태양에너지, 원자력, 에너지 축적 배터리 시스템 등을 포함한 종합에너지 기업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선대회장은 이미 42년 전에 현재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 기후위기와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을 내다본 것이었다.

1991년 울산CLX 모형플랜트를 관람 중인 최종현 선대회장.(사진=SK그룹.)
최 선대회장의 예언처럼 SK이노베이션은 초대형 에너지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첫발을 뗐다. SK그룹의 양대 에너지 계열사 SK이노베이션과 SK E&S는 17일 각각 이사회를 개최하고 양사 합병 안건을 의결했다. 이번 합병이 성사되면 자산규모 106조원의 유례없는 초대형 에너지 기업이 탄생한다.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 현상)으로 위기에 빠진 배터리 계열사 SK온을 구하는 동시에,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최대 민간 에너지 기업으로 등극하기 위한 전략이다. 합병안이 다음달 27일 예정된 주주총회에서 승인되면 합병법인은 오는 11월 1일 공식 출범하게 된다.

양사의 합병비율은 1대 1.1917417로, SK이노베이션과 SK E&S 각각의 기업가치를 근거로 산출됐다. 합병비율에 따라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이 합병신주를 발행해 SK E&S의 주주인 SK㈜에 4976만9267주를 교부한다. SK이노베이션 신주는 11월20일 상장될 예정으로, 합병 후 SK이노베이션 최대주주인 SK㈜의 지분율은 36.22%에서 55.9%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양사의 합병은 외형적 성장 외에 △포트폴리오 경쟁력 강화 △재무·손익구조 강화 △성장 모멘텀 확보 등 3가지 측면에서 시너지를 내게 된다. 합병회사는 이를 바탕으로 오는 2030년 EBITDA(상각전 영업이익) 20조원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에너지 안보를 위해 1962년 설립된 SK이노베이션은 1980년 SK그룹에 인수된 이후 꾸준한 연구개발과 사업다각화를 이뤄왔다. 1984년에는 방향족공장 건설에 착수하고 1985년에는 울산기술지원연구소를 설립해 기술개발에 힘을 쏟았다. 1990년대 들어서는 윤활유 ZIC를 출시했으며 유전개발에서 정제·판매까지를 아우르는 종합에너지 회사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했다.

이후 2000년대 들어서는 배터리 사업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2004년 말 세계 세 번째로 고용량 리튬이온 전지 분리막(LiBS)를 독자기술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으며, 2009년에는 다임러 그룹 산하 미쓰비시후소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그 결과 배터리 계열사 SK온은 현재 사용량 기준(중국 시장 제외) 세계 3위 배터리 기업으로 올라섰다.



SK E&S도 1999년 SK이노베이션에서 분할돼 도시가스 지주회사로 출범한 이래 성장을 거듭했다. 전 세계를 무대로 LNG 밸류체인을 완성하며 국내 1위 민간 LNG 사업자로 자리매김했다. 도시가스를 비롯해 저탄소 LNG 밸류체인, 재생에너지, 수소, 에너지솔루션의 4대 핵심사업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시너지를 발휘하는 그린 포트폴리오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합병은 전기차 시장 캐즘, 에너지·화학 사업의 불확실성 증가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추진됐다. 특히 짧은 시간 내 글로벌 탑티어 전기차 배터리 업체로 성장하긴 했지만, 현재 10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인 SK온의 경쟁력 강화가 이번 합병의 핵심으로 꼽힌다. 합병회사는 자산 100조원, 매출 88조원 수준으로 외형이 커지고, EBITDA는 합병 전 보다 1.9조원 늘어난 5.8조원 수준으로 증가한다. 배터리 등 미래 신사업에 꾸준히 투자할 탄탄한 재무체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합병회사는 에너지 사업이나 전기화 사업 모두에서 자산과 역량을 통합해 본원적 경쟁력과 수익성이 강화를 노린다. SK이노베이션의 원유정제, 원유·석유제품 트레이딩, 석유개발사업과 SK E&S의 가스개발, LNG 트레이딩, 복합화력발전의 경우 자원개발 역량이 결합돼 탐사·개발 경제성과 수익성이 높아진다. 선박·터미널 등 인프라도 공동 활용해 운영 최적화가 가능해진다. 양사가 추진해온 전기화도 한층 탄력 받을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은 미래 에너지 사업으로 전기차 배터리, ESS, 열관리 시스템 등을 추진해왔고, SK E&S는 재생에너지, 구역 전기사업 등 분산전원, 수소, 충전 인프라, 에너지 솔루션 등에 역량을 집중해 왔다. 양사가 보유한 제품과 서비스를 결합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신규 시장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사장은 “양사 합병은 에너지 산업을 둘러싼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한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혁신”이라면서 “SK이노베이션은 이번 합병을 통해 현재부터 미래까지 대한민국 에너지 산업을 선도하는 ‘토탈 에너지 & 솔루션 업체’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비율은 1대 1.2 수준으로 결정됐다. 당초 업계에서는 1:2 수준의 합병비율이 예상됐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양사의 기업가치를 사실상 비슷하게 평가했다. SK이노베이션 주주들 입장에서는 예상보다 회사 가치를 높게 받은 것이다. 이에 따라 SK E&S와 사모펀드 운용사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지 관심이 모인다. KKR은 SK E&S가 발행한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인수하며 3조1350억원을 투자했는데, SK이노베이션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는 것은 반대로 SK E&S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낮게 측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3조원이 넘는 RCPS 상환을 위해 비주력 자산을 활용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