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양숙·박원순 사찰' 이종명, 혐의 부인…"지시·보고 없었다"

by한광범 기자
2018.10.26 15:40:49

국정원 '포청천 사업' 통해 야당 인사 무차별 사찰 혐의
前대북공작국장 "원세훈 지시로 北접촉 여부 확인차원"

이종명 전 국가정보원 3차장.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이명박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내 불법사찰 공작인 ‘포청천 사업’을 주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종명(61) 전 3차장이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재판장 강성수)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이 전 차장 변호인은 “지시한 적도 없지만 보고를 받은지도 불분명하다”고 주장했다. 함께 기소된 김승연(59) 전 대북공작국장 변호인도 “국정원의 고유 업무”라며 무죄 주장을 폈다.

이들은 원세훈 전 원장 지시로 ‘TF팀(일명 특명팀)’과 대북공작국을 통해 고 노무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와 영화배우 문성근씨, 명진스님 등 야권 성향 인물들을 사이버해킹하는 등 야권 인사들을 무차별적으로 사찰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연이어 서거한 직후 추모 열기가 오르자 2009년 9월 방첩국 내에 ‘종북좌파세력 척결’과 ‘지휘부 하명사항 수행’을 목표로 하는 특명팀 설치를 지시했다.

특명팀은 이명박정부의 정책이나 국정원에 반대의견을 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사찰을 벌였다. 신문사 편집국장에 대한 사이버해킹은 물론 한명숙 전 총리,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등에 대해서도 사찰이 이뤄졌다.

국정원은 특명팀을 2011년 7월까지 운용한 후 야당 인사 사찰 업무를 대북공작국으로 이관했다. 대북공작국은 권 여사와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해 “북한 접촉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무차별적인 사찰을 진행했다. 검찰은 원 전 원장 등을 기소했지만 특명팀 활동과 관련해 최종흡 전 3차장에 대해선 공소시효(7년)가 지나 기소하지 못했다.



이 전 차장은 이밖에도 대북공작금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뒷조사에 사용하도록 한 혐의(국고손실)도 받는다.

하지만 이 전 차장 측은 첫 공판에서 이 같은 공소사실 전부를 부인했다. 변호인은 “특명팀 활동은 3차장 부임한 2011년 4월 이전에 일어난 일이고 대북공작금의 유용도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이어 “권 여사와 박 시장 사찰도 원 전 원장이 김 전 국장에게 지시한 사항으로 이 전 국장은 지시한 적이 없고 보고를 받았는도 불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김 전 국장 측도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변호인은 권 여사와 박 시장 사찰 혐의 등에 대해 “원 전 원장이 이들의 방중·방일 시 북한 관련 인사들에 대한 접촉 여부를 알아보라고 해 동향을 파악했던 것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국정원 고유 업무이기에 직권남용죄가 되지 않는다”며 “원 전 원장이 사찰 의도가 있었더라도 김 전 국장이 몰랐기에 공모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편, 예비역 육군 소장인 이 전 차장은 사단장을 거쳐 합동참모본부 민군심리전부장을 끝으로 전역한 후 2011년 4월부터 2013년 4월까지 국정원에서 근무했다. 그는 국정원 댓글공작 혐의로 원 전 원장,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과 함께 기소돼 지난 4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 전 차장은 정권교체 후 댓글공작을 위해 민간인 댓글부대를 운용한 혐의(국고손실)로 구속기소된 후 1심 판결을 남겨두고 있다. 법원은 공범인 원 전 원장의 다른 정치공작 사건 심리가 길어지자 지난 4월 구속상태였던 이 전 차장을 보석으로 석방했다. 검찰은 지난 5월 ‘포청천 사업’ 주도 혐의로 이 전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추가로 청구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