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총리후보자를 둘러싼 4대 의혹과 해명

by피용익 기자
2015.02.04 18:46:19

인사청문회준비단 의혹해명 요약자료 배포

[세종=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이완구 국무총리후보자 인사청문회 준비단은 4일 이 후보자를 둘러싼 4대 핵심 의혹에 대한 해명을 다시 한 번 요약, 배포했다. 그동안 사안별로 이뤄지던 해명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다.

여기에는 지난달 29일 공개검증으로 의혹이 해소된 차남 병역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파란색 글씨는 준비단 보도참고자료 원문이다.)

준비단은 이 후보자가 타워팰리스 아파트를 투기 목적으로 매입했다는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이 후보자가 타워팰리스에서 실제로 살았고, 매매시 세금도 빠짐없이 냈다는 주장이다.

후보자는 2002년 경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 거주하였는데 이는 후보자가 소유하고 있던 유일한 아파트였음. 후보자는 2002년 11월 경 신축하는 타워팰리스를 구입하기 전 유일한 거주지인 신현대아파트를 처분하고 새로운 거주지를 찾아 매수한 타워팰리스에서 거주할 수 밖에 없었으므로, 실질 거주 목적으로 매수한 것임.

위와 같이 실제 거주 목적으로 매수하였고, 2003년 3월 경 타워팰리스 잔금을 모두 치르고 후보자 가족들이 입주하였기 때문에, 후보자가 타워팰리스를 매수한 것에 투기목적이 전혀 없음.

아울러, 후보자는 ‘딱지’를 매수한 것이 아님. 딱지란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하는 경우 토지 소유주나 세입자들이 갖는 권리인데, 타워팰리스는 삼성중공업이 분양을 한 것이므로 딱지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음.

후보자가 미등기 전매를 한 것도 아님. 미등기 전매란 등기가 되어 있는 부동산을 매수하면서 매수인이 자기 이름으로 등기를 하지 않고 다시 되파는 행위를 말하는 것인데, 타워팰리스는 2003년 3월 하순경에 비로소 처음으로 분양자인 삼성중공업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가 된 반면, 후보자는 소유권보존등기가 경료되기 이전인 2002년 11월 경 타워팰리스 분양권을 매입하였음. 또한 후보자는 잔금 지급 시 등기를 완료하였고, 분양권 취득 후 전매한 사실도 없으므로, 후보자가 ‘미등기 전매’를 한 사실이 없음.

후보자가 2002년 11월 타워팰리스를 매수할 당시 관계 법령(당시 주택건설촉진법 제32조의5 제3항 및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제14조의2 제1항)은 분양권을 매매를 허용하였므로, 후보자가 타워팰리스 분양권을 적법하게 매입하였음.

후보자가 타워팰리스를 구입할 당시인 2002년 11월만 하더라도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어 있었는데, 후보자가 타워팰리스를 매수한 이후인 2003년 3월경부터 강남 부동산 가격이 폭등함. 참고로 압구정동 한양아파트와 대치동 선경아파트 만하더라도 2003년 1월에서 2003년 10월 기간 동안 약 40% 가량 상승하였음.

후보자의 가족은 2003년 3월 타워팰리스 아파트로 이사하여 실제 거주하였으나, 이 아파트 매입 사실이 지역구 신문에 보도되는 등 사회적 이슈가 되자 2004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부담감을 느껴, 2003년 10월 17일 서둘러 매각하였음.

후보자는 이 아파트의 분양권을 1,179,800,000원에 취득하고 건설사에 잔금 88,880,000원을 납부하였으므로, 이 아파트의 취득대금 총액은 1,268,680,000원임. 이 아파트 매도금액 1,640,000,000원에서 취득금액 1,268,680,000원, 취등록세 50,306,970원, 양도소득세 97,365,870원, 양도소득에 부과되는 주민세 9,736,580원과 소유권이전비용 및 중개수수료 등 18,001,805원 차감 시 실 매매차익은 195,909,495원임. 후보자는 이와 관련 취득세, 등록세, 양도세 등 관련 모든 세금을 누락 없이 정당하게 납부하였음.

준비단은 이 후보자 장인이 분당 토지를 매수한 후 이 후보자의 차남에게 증여한 과정과 관련한 투기 및 탈세 의혹에 대해서도 정면 반박했다.

후보자 장인은 외국에서 의사생활을 하다가 2000년 경 한국으로 완전 귀국하면서, 외국에서처럼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다며 집을 지을 적당한 부지를 알아봐 달라고 후보자에게 부탁하였음.

그러나 장인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여 건축허가 기간 내 집을 짓지 못해 2002년 12월 23일 두 필지에 대한 건축허가가 취소되었고, 2002년 4월 12일 장인과 장모가 위 두 필지의 토지를 병수발을 하던 딸(후보자의 부인)에게 증여하게 된 것임.

후보자의 부인은 매년 세금 부담이 커서 2011년 위 두 토지를 미국 법률회사 홍콩지사에 근무하고 있던 차남에게 증여하였고, 후보자의 차남은 5억1,363만원의 증여세 외 취득세 및 등록세를 신고 납부하였음.

이처럼 후보자의 장인과 장모가 전원주택을 짓기 위해 위 토지를 매수하였고 건축허가까지 신청하였으나, 병원에 입원하고 결국 별세하여 전원주택을 짓지 못했고, 세월이 흐르면서 후보자의 장인과 장모가 딸(후보자의 부인)에게 증여한 후 다시 후보자의 차남에게 증여하게 된 것이므로, 투기 목적 거래가 아님.

한편 이 과정에서 후보자 가족들이 실명으로 적법하게 거래하였고 증여세나 취득세 및 등록세 등 관련 세금도 성실히 납부하였으므로, 차명 거래도 아님.

후보자의 장인은 2001년 3월 30일 부동산컨설팅업체와 최초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을 지불하였으며 2001년 4월 30일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하였으나, 매도 위탁과 등기이전을 수탁받은 부동산컨설팅업체가 등기를 대행하면서 이 업체가 다수의 원소유주(매도자)들에게 계약금을 지급한 2000년 6월 29일을 토지매입계약일로 일괄 신고하였음.

부동산컨설팅업체는 20∼30년 동안 토지를 소유해 온 매도자들의 양도세 부담을 줄이고 건축허가를 빨리 받기 위해 2000년 6월 29일(매수자가 아니라 업체가 원소유주들에게 계약금을 지불한 날짜)을 등기 상 매매원인일로 했다고 설명함.

참고로 이 주택단지 120여 필지 중 부동산컨설팅업체가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매각한 필지는 약 30여 필지로서, 전체 필지의 30%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되었음.

세부 진행 경과

2000.6.29 등기부 상 매매일 (등기일자는 2001.4.30임)

2000.6.29 원 소유주(매도인) 명의로 건축허가 신청

2000.8.29 원 소유주(매도인) 명의로 건축허가 완료

2000.9.19 ∼ 다수 언론에 위 토지의 홍보성 기획기사 보도



2001.3.30 후보자 장인과 부동산컨설팅업체와의 매매계약 체결

(계약금 지급)

2001.4.30 후보자 장인 명의로 소유권 이전 등기

2001.5.12 후보자 장인 명의로 건축주 변경 신청

2001.5.14 후보자 장인 명의로 건축주 변경 허가

후보자 장인은 2000년 8월 29일 건축허가가 나고 토지 분양에 대한 광고성 홍보 기사(2000년 9월 이후 한국경제, 동아일보 , 매일경제 등)가 10여 차례 보도된 이후인 2001년 3월 30일 계약금을 지불하고 위 토지를 매입하였음. 따라서 후보자 장인은 사전 정보가 아니라 누구나 접근할 수 있었던 공개된 정보에 의해 토지를 매수한 것임.

후보자 가족이 보유한 분당 토지의 현재 공시지가는 약 21억5천만원인 반면, 후보자 가족은 위 토지에 취득대금 7억5천6백만원에 14년간 보유하면서 증여세 약 5억4천6백만원(부인 3,314만원, 차남 5억1,363만원 납부)과 취등록세와 종합부동산세 등으로 약 2억 6천만원을 납부하는 등 총 15억6천3백만원 지출하였음.

후보자의 가족이 위 토지를 단기간 내 매매한 사실이 없고 위와 같이 많은 세금을 내고 계속 보유하고 있으므로, (단기 매매로) 투기한 사실이 없음.

준비단은 이 후보자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서 삼청교육대 관련 핵심 역할을 했다는 보도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일부 언론에서 후보자가 1980년 ‘삼청교육대 사건’과 관련하여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이는 사실과 다름.

삼청교육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이하 ‘국보위’)에서 입안해 국보위 산하 ‘사회정화분과위원회’에서 전반적인 업무의 조정·통제를 담당하였음.

후보자는 국보위 ‘내무분과위원회’의 가장 하위직 실무자인 행정요원으로 문서수발, 연락업무 등을 담당하였음.

후보자가 국보위 내무분과위원회로 파견된 1980년은 후보자가 경찰로 전직한 지 2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30세에 직위도 5급 사무관급에 해당하는 경정에 불과했기 때문에 국보위 내무분과위원회 내에서 의사결정 등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고 행정요원으로 문서수발, 연락업무 등 행정 업무를 담당하였을 뿐임.

또한 후보자가 소속된 ‘내무분과위원회’는 ‘내무부, 중앙선관위, 서울특별시, 새마을운동에 관한 사항’이 소관업무이었음.

국보위 분과위원회는 [ 위원장 - 위원 - 전문위원 - 행정요원 ]의 체계로 구성되어 있었음.

당시 국보위 내무분과위원회 위원이었던 최환 전 부산고검장 역시 언론 인터뷰에서 후보자가 국보위 내무분과위원회 내에서 행정실무를 담당했을 뿐 삼청교육대와는 무관함을 밝혔음.

[ 최환 전 국보위 내무분과위원회 위원 인터뷰 내용 ]

“국보위라는 게 80년도에 생겨... 내무분과위원회에 가니까 나보다 먼저 와있는 사람이 이완구... 이완구는 당시 경찰이고 경정... 삼청교육대(관련한 일을) 하는 것은 그때 사회정화위원회에서 한 일... 나도 그렇고 이완구 씨는 전혀 관여를 안 해... (내무분과위원회 일은) 민원 간소화하는 거, 연좌제 폐지하는 거, 교통사고처리특례법 하는 거 그 정도... 행정적인 작업을 도와주라는 것이지... 경무관도 아니고 총경도 아닌 경정으로 와 있는 사람이 그런 거창한 일을...”

준비단은 이 후보자가 우송대 솔브릿지 국제대학 석좌교수로 근무하면서 강의 6회에 6000만원을 받았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반박 입장을 내놓았다.

후보자는 도지사를 사퇴한 이후 2010년 1월 15일부터 2011년 4월 30일까지 우송대학교 솔브릿지 국제대학의 석좌교수로 근무하면서, 임용계약서에 따라 퇴직금 포함하여 월 4백만원, 연 48,000,000원의 급여를 지급받았음. 약 1년 4개월여 동안 근무하면서 57,064,000원의 급여를 받았으며, 2,500,854원의 소득세와 주민세를 납부하고 54,563,146원을 실제 수령하였음.

후보자는 석좌교수로 재직하면서 특강(6번의 특강 외에도 교직원을 대상으로 4회 특강을 실시함)을 하였지만, 강의를 전담한 것이 아니라 국제교류 협력과 우수교원 유치 및 대학의 발전방향을 자문하였음.

후보자는 석좌교수로 재직 기간 중 해외 대학 및 유관기관들과의 교류 협력과 이에 대해 자문하고, 도지사 시절에 맺은 자매결연 인맥을 활용하여 일본과 중국의 7-8개 시도로부터 유학생을 유치하고 각 대학과의 교류협력을 추진하였음. 후보자는 국제경영대학 인증을 받도록 제안하고 해외의 우수 학생과 교원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을 했고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음.

후보자의 석좌교수로서의 주된 역할은 도지사 재직 시 경험과 해외 인적네트워크를 활용하여 국제경영대학에 우수 학생과 교원을 유치하고 학교를 발전시키는 것이었고, 강의나 특강에 역점을 둔 것이 아님.

이처럼 후보자는 1년 4개월 동안 석좌교수로서 임용 기간 중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였고 임용계약서에 따라 월4백만원의 급여를 수령하였음. 따라서 특강은 수행한 활동 중 일부에 불과하고, 월급여(연봉)를 받았지 특강료를 별도로 받은 적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