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사업 물꼬 튼 구룡마을..첫삽 들기까지 '산 넘어 산'

by이승현 기자
2014.12.18 17:31:56

'함께 일 해야 할' 서울시-강남구 신뢰 회복 급선무
재원 마련도 쉽지 않아..SH 공사채 발행 여부가 관건
마을 거주민, 소송·시민단체 연계 등 강경 대응 예고

[이데일리 이승현 신상건 김성훈 기자] 서울시와 강남구가 그동안 이견을 보여온 개포동 ‘구룡마을’ 개발 방식에 전격 합의하며 2년여간 중단돼온 개발사업이 내년부터 본격 시작된다.

구룡마을이 개발되면 1980년대부터 낡은 판잣집과 비닐하우스들로 집단 무허가촌을 이루고 있던 지역이 공원과 복지시설이 있는 주거단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번에 개발되는 구룡마을의 면적은 25만2777㎡로, 이곳에는 2700여가구의 아파트와 학교, 문화·노인복지시설, 공공청사, 공원 등이 들어설 계획이다. 하지만 장밋빛 꿈을 이루기까지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우선 이번 사업에서 긴밀하게 협조해야 할 서울시와 강남구간 신뢰 회복이 시급하다. 강남구청은 지난 7월 구룡마을과 관련해 비리 혐의가 있다며 서울시 공무원들을 고소·고발했다. 서울시에서는 이번에 개발 방식을 합의하면서 강남구청 측에 고소·고발을 취하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강남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18일 기자회견에서 “이전에 벌어진 불법부당 등 각종 의혹에 대해서는 현재 수사 중인 검찰에서 명명백백히 밝혀 주기를 기대한다”며 오히려 더욱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게다가 “혼용 방식을 주장한 서울시 공무원들을 이번 개발 관련 업무에서 배제하지 않으면 함께 일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측은 이에 대해 “신 구청장이 인사 문제를 공식 거론한 것은 부적절하다”며 즉답을 피하면서도 불쾌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구룡마을 개발사업은 강남구가 개발 계획안을 입안하면 서울시가 허가해 추진하는 체계를 갖고 있다. 이 두 기관이 협력하지 않으면 추진할 수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지금과 같이 양측이 서로 엇박자를 낸다면 개발사업 자체가 다시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구룡마을을 개발하기 위한 재원 마련도 문제다. 이번 사업의 시행사인 SH공사가 강남구청에 지난 6월 제출한 사업계획안을 보면 임대주택 건축비와 토지 보상금 등을 포함해 총 사업비가 약 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SH공사는 이 중 70%인 4200억원 가량을 공사채 발행을 통해 마련할 계획이다.



하지만 행정자치부가 정한 지방자치단체 산하기관의 공사채 발행 심의 기준에 걸려 공사채 발행을 통한 재원 마련이 어려울 수도 있다. 행자부는 지난해 지자체 산하기관의 과도한 부채(빚)로 인한 부실을 막기 위해 SH공사를 포함한 모든 기관의 부채비율을 2017년까지 단계적으로 200%로 낮추도록 했다. 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채권 발행을 할 수 없다.

SH공사의 현재 부채비율은 280% 수준으로 내년 공사채 발행 심의 기준인 280%에 걸려 공사채 발행이 불가능해진다. 결국 부채비율을 낮추려면 보유하고 있는 자산 가치를 늘리거나 부채를 줄여야 하는데 SH공사가 임대주택을 지을 때 받는 보증금 등이 비금융부채로 잡혀 있어 이를 줄이기가 쉽지 않다.

금융권 관계자는 “SH공사는 2012년 5354억원의 대규모 적자를 낸 지 1년 만에 순이익이 흑자로 돌아섰지만 임대주택 등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 많아 부채를 줄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룡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과의 타협을 이끌어 내는 것도 풀기 어려운 숙제다. 현재 구룡마을에는 1200여 가구, 25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현재 계획대로 개발되면 이들 중 토지를 가진 사람은 공시지가 기준으로 보상을 받게 되고, 모든 세대가 영구임대주택을 한 채씩을 공급받게 된다.

하지만 토지주들은 개발 이익을 전혀 나눠 가질 수 없는 ‘수용 방식’에 대해 재산권 침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또 토지주로부터 전용면적 82.5㎡ 규모의 아파트를 한 채씩 받기로 한 400여명의 주민은 이를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단순히 공시지가로 땅값을 보상받고 임대주택을 받는 것으로는 타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날 서울시와 강남구의 발표 직후 구룡마을 주민은 모임을 열고 법적인 조치를 강구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또 전국철거민협의회 등 시민단체에 도움을 요청할 준비도 하고 있다. 서울시, 강남구청, 주민이 함께 모여 대화를 하자고도 제안했다.

구룡마을 유귀범 주민자치회장은 “만약 서울시와 대화가 잘 안되면 강경하게 투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우리를 궁지에 몰아넣는 일을 만들지 말아 달라”고 하소연했다. 구룡마을 한 주민은 “이번 발표에 대해 좌절감을 느낀다. 주민에 대한 얘기(배려)가 하나도 없다”며 “주민의 입장을 생각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