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 강국' 유럽이 어쩌다…"5만명 일자리 잃을 것" 우울한 전망

by양지윤 기자
2024.11.26 16:23:39

'전기차 캐즘'에 몸살 앓는 유럽
수요 정체에 공급은 과잉 '이중고'
폭스바겐·테슬라 등 몸집 줄이기에 부품업체도 연쇄 타격
독일 등 주요국 전기차 보조금 중단 여파
우크라 전쟁 중인 러시아, 천연가스 중단에 에너지 비용도 부담
독일 정부 연정 붕괴에 보조금 논의도 올스톱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자동차 강국인 유럽이 전기차 수요 부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을 포함한 주요 회원국들의 보조금 지원 중단과 부족한 충전 인프라로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정체)에 맞닥뜨린 가운데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생산 전환에 따른 과잉 생산 문제까지 겹치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주요 완성차 기업들이 인력 줄이기에 나서면서 연쇄적으로 부품 업체도 감원을 단행하는 등 올해만 최소 5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온다.

지난 6일(현지시간) 독일 오스나브루에크에서 독일 IG 금속노조가 ‘경고 파업’을 벌이는 동안 폭스바겐 AG 직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플래카드에는 “모든 폭스바겐 사업장의 일자리 - 지금보다 더한 투쟁은 없었다”라고 적혀 있다.(사진=로이터)
26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은 유럽 자동차 업계가 올해 최소 5만명을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완성차 기업 중에선 독일 폭스바겐이 3만명의 인력을 줄일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실적 부진이 이어지면서 독일 내 공장 3곳의 폐쇄를 검토하고, 노조와 협상을 진행 중이다.

미국 테슬라는 독일 동부 공장 ‘기가팩토리’ 직원 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3000명을 감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포드자동차도 지난 20일 독일과 영국에서 4000명을 감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유럽 완성차 업체인 스텔란티스도 현재 최대 2만5000명 감원을 검토하고 있다.

주요 완성차 업체가 몸집을 줄이면서 부품업체들도 구조조정이 잇따르고 있다. 독일 자동차 부품사 ZF는 전기차 구동 시스템 부문에서 일하는 직원을 중심으로 최대 1만4000명을 오는 2028년까지 감원할 예정이다. 프랑스 포르비아도 전체 직원의 13%에 해당하는 1만명 감축을 검토한다. 닛케이는 완성차와 부품사의 향후 전망과 추정치까지 포함하면 감원 규모가 1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유럽연합(EU) 지역 자동차 산업이 구조조정으로 내몰리게 된 건 전기차 활성화 대책이 엇박자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EU는 오는 2030년까지 전기차를 신차 판매의 80%, 2035년까지 100%로 확대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구체적인 전기차 육성책은 각 회원국에 맡겼다. 그간 전기차는 각국 정부의 구매 보조금과 세금 감면으로 판매량이 꾸준히 증가했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주요국들이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거나 축소하면서 판매가 급격하게 둔화했다.

특히 EU 최대 전기차 시장인 독일이 2016년부터 시작한 전기차 신차 구매 보조금 지원을 중단한 건 직격탄이 됐다. 독일은 지난해 9월부터 기업의 전기차 구매에 대한 보조금을 제외한 데 이어 같은해 12월 모든 보조금을 전면 중단했다. 이로 인해 작년 9월부터 14개월 동안 전기차 판매량이 전년 동월 대비 증가한 달은 단 3개월에 불과했다.

독일의 올해 1~10월 누적 전기차 판매량은 32% 감소한 반면 내연 기관차 판매량은 7% 증가했다. 유럽 31개국에서도 같은 기간 전기차 판매는 2% 감소했다.



다르크 볼슐레거 독일 자동차 연구센터 연구원은 “전기차는 차체 가격뿐만 아니라 충전 가격도 비싸다. 경제 규모가 엔진차에 근접하기까지 공적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전기차 수요 감소에 따른 생산과잉 현상도 업계를 위협하는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폭스바겐은 2022년까지 5년간 전동화, 소프트웨어 등 전기차 관련 분야에 300억유로(약 43조9900억원)를 투자했고, 2025년부터 신형 전기차를 판매하는 독일 BMW는 올해 1~9월 연구개발비에 66억유로(약 9조6700억원)를 쏟아부었다. 전년 동기 대비 27% 증가한 규모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으로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 에너지 비용이 상승한 점도 유럽 전기차 기업들의 수익성을 짓눌렀다. 특히 전력을 대량으로 소비하는 자동차 산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 독일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 자동차 산업의 전기요금은 1메가와트시당 190유로로 중국의 2배 이상, 미국의 3배에 육박했다.

토마스 쉐퍼 폭스바겐 승용차 부문 대표는 독일 일간지 벨트암존탁과의 인터뷰에서 “경쟁사나 동유럽의 자사 거점에 비해 독일 내 제조 비용이 2배 높다”며 “생산 능력을 줄이고 새로운 현실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추진 중인 공장 폐쇄가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이런 가운데 독일 정부는 폭스바겐에 대한 공적 지원 방안을 둘러싸고 혼란을 겪고 있다. 독일 정부는 애초 중단된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대체할 지원책을 논의하고 있었으나 현재 중단된 상태다. 지난 6일 사회민주당 소속인 올라프 숄츠 총리가 경제정책을 둘러싼 갈등 끝에 친기업 성향의 자유민주당 출신인 크리스티안 린트너 재무장관을 해임하면서 연정이 붕괴된 탓이다.

녹색당 대표인 로베르트 하베크 부총리 겸 경제·기후 보호 장관은 지난 9월 독일 북부 엠덴의 폭스바겐 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정치적 지원을 약속하면서도 “문제의 대부분은 폭스바겐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며 정부 개입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닛케이는 “지난 7월 2기 임기를 시작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2035년까지 엔진 구동 신차 판매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뜻을 분명히 했지만 유럽 내에서 탈탄소에 따른 비용 증가와 제조업 침체에 반발하는 계층이 극우·극좌 포퓰리즘 정당을 지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