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개헌안]권력구조 놓고 보수-진보 퇴로 없는 정쟁
by이승현 기자
2018.03.22 17:02:49
정부여당, 책임정치 위해 4년 연임제 채택
야권 "제왕적 대통령제 유지..임기만 늘렸다"
"분권형으로 대통령 강력한 권력 중화시켜야"
진보 우위 지형..與 '대통령제' 野 '내각제' 선호
정략적 접근으론 개헌 불가능..국정 혼란 우려
|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왼쪽)이 22일 오후 국회를 방문해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은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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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4년 연임제를 골자로 하는 권력구조 개헌안을 발표한 것과 관련해 야당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개헌을 하자고 했더니 오히려 대통령의 권한은 내려놓지 않은 채 임기만 8년으로 연장시켜 놨다는 지적이다.
우선 청와대가 내놓은 대통령 4년 연임제는 대통령을 연속으로 4년씩 두번, 총 8년간 할 수 있는 제도다. 5년 단임제에서 나타나는 임기말 레임덕 현상과 짧은 임기로 인해 장기적인 정책을 끌고 갈 수 없다는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22일 청와대에서 관련 내용을 발표하면서 “87년 개헌시 5년 단임제를 채택한 것은 장기간 군사독재의 경험 때문이었다”며 “촛불혁명을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었고 국민들의 민주역량은 정치역량을 훨씬 앞서고 있어 이제 책임정치를 구현하고 안정되게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대통령 4년 연임제를 채택할 때가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4년 연임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장제원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제왕적 권력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연임제까지 주장하고 나섰다”며 “중임이나 연임이나 말의 성찬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당은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축소한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과 국회가 선출한 총리가 권력을 나눠갖고 국가를 통치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국방과 외교 등 외치는 대통령이 맡고 경제, 사회 등 내치는 총리가 맡는 식이다.
정태옥 한국당 대변인은 “국회 다수 정파의 지지를 받는 총리가 직선에 의한 대통령의 강력한 권력을 중화시킬 필요가 있다”며 “책임총리의 경우 대통령 바라기가 아니라 끊임없이 국회와 상의해 법안과 정책을 통과시키는데 매진할 것이고 국정의 효율성도 극대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좀더 속내를 들여다 보면 정부여당이나 야당 모두 각자의 권력구조를 내세우는 데에는 정치적 셈법이 있다. 특히 진보진영의 장기집권계획과 이에 맞서려는 보수진영의 방어 논리가 숨어 있다는 분석이다.
촛불혁명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전반적인 정치 지형이 진보 우위로 바뀐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여당 입장에선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게 유리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게다가 4년 연임으로 한 대통령이 최장 8년까지 정권을 가질 경우 연속으로 두명의 대통령만 배출해도 16년까지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 이는 20년 정도 집권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진보진영의 인식과 궤를 같이 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진보진영에서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집권기에 이뤄놓은 정치 발전이 꽃 피우기도 전에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과거로 퇴보했다는 문제 의식이 있다”며 “최소 20년은 집권해야 실질적인 정치 진보를 이뤄낼 수 있다는 인식이 있고 이번 개헌 역시 이런 인식과 무관치 않다”고 언급했다.
반면 한국당 등 보수진영이 분권형 대통령제를 주장하는 것도 비슷한 속사정이 숨어 있다. 진보 우위의 정치 지형이 유지되는 한 보수가 국민투표로 당선된 대통령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현실적 판단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대신 지역 기반이 강한 보수진영이 국회를 장악, 책임총리를 통해 실질적인 권력을 차지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또 한국당 입장에선 국회에서 제1당을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다당제 하에서 현재 수준의 세만 유지해도 연정 등을 통해 권력을 나눠가질 수 있는 가능성도 열려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직선을 통한 정권 재창출이 쉽지 않은 보수진영이 내각제를 하고 싶지만 부정적 여론이 높아 대통령제로 포장한 분권형 대통령제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같은 정략적 접근으로는 개헌이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정부여당이든 야당이든 정치적 의도가 뻔히 보이는 방식으로 개헌을 추진할 경우 상대방의 반대에 막혀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대통령제를 할 것이면 총리를 없애고 미국식 순수 대통령제를 하고, 아니면 완전한 내각제를 해야지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제도를 만들면 국정 혼란만 야기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