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中 외면한 美농산물 日에 팔아치운다

by김인경 기자
2019.08.26 16:51:48

미일 무역협정 합의…日, 미국산 농축산물 수입 확대
日, 미국산 옥수수 250만톤 수입 예정…연간수입 25%에 달해
"中과 무역분쟁하는 트럼프, 2020년 재선 앞두고 탄력"
日, 자동차 관세 인하 포함 못해…美에 ''퍼주기'' 비판도

[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중국이 외면한 미국산 농산물을 이제 일본이 사들일 판이다. 일본이 사료용 옥수수를 비롯한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미·일 무역협정 초안에 미국과 합의했다. 재선을 1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선 미국 농가의 새 소득원이 생겼지만 일본에서는 ‘퍼주기’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26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아사히신문 등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프랑스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미·일 무역협상의 주요 원칙에 대해 합의했다.

내용의 핵심은 일본은 미국산 사료용 옥수수를 포함해 농산물 수입을 확대하고 미국은 일본산 공업제품의 수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관세를 삭감하는 것이다.

또 일본은 미국산 소고기와 돼지고기 관세를 낮춰 미국산 축산물 수입도 확대하기로 했다. 현재 일본은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할 때 38.5%의 관세를 적용하고 있지만 향후 단계적으로 9%까지 낮출 계획이다.

이는 일본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회원국에 준하는 수준이다. 미국은 지난 2017년 TPP에서 탈퇴한 바 있다. 양국은 이번에 큰 틀에서 합의를 이룬 만큼 다음 달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UN) 총회에서 협정문에 도장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번 협상에 대해 만족스럽다는 입장이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 따르면 일본은 매해 미국의 농축산품을 140억달러어치 수입하고 있다. 이번 협정이 완료되면 미국산 농축산물을 추가로 70억달러어치 더 수입하게 된다. 특히 일본이 미국산 사료용 옥수수를 연 250만톤 수입하기로 했는데 이는 일본의 연간 수입 사료용 옥수수의 25%에 달하는 규모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를 만난 직후 “이는 엄청난 일”이라며 “(미국) 농가에 훌륭한 합의”라고 평가했다.

관세 인하의 혜택을 보는 미국 축산업계도 반기고 있다. 미국 육류 수출 연합회는 “트럼프 행정부가 대일 교섭에 우선적으로 임한 점에 대해 감사를 표한다”고 언급했다. 미국 돼지고기 생산자 협정 역시 “이번 협정이 완료되면 더욱 공정한 경쟁 환경이 복원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협정은 특히 2020년 재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구원투수’ 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농축산업계는 중국과의 무역협상이 난항을 빚으며 매출 급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난해 미국이 중국에 수출한 농축산업 제품은 2017년보다 무려 53%나 줄었다. 여기에 올해 역시 미중간 갈등이 심화하며 상반기(1~6월) 미국의 대중(對中) 농축산업 제품 수출은 2018년 같은 기간 보다 20% 쪼그라든 상태다.

특히 미국 중서부의 농업지대 ‘팜 벨트(Farm belt)’가 중국과의 무역전쟁 탓에 직격탄을 맞았다. 이 지역이 트럼프 대통령의 소속 정당 공화당의 지지기반인 만큼, 트럼프 대통령 역시 재선을 1년 남기고 압박을 받아 왔다. 하지만 일본이 미국산 농축산물 구매를 확대하기로 한 만큼, 트럼프 대통령도 한숨 돌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퍼주기’ 협정이란 비난이 일고 있다. 실제로 일본 측이 주장하던 승용차 관세 인하는 아직 협정 내용에 포함되지 않았다. 미국은 대신 자동차 부품 등 일본산 공업제품의 관세를 삭감하기로 했지만, 일본 산업계는 협상 내용에 불만스럽다는 반응이다.

일본 매체들은 일본 정부가 한국과의 대립이라는 불안정한 상황 탓에 미국과의 협상에서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북한을 둘러싼 동아시아 관계가 급변하는 만큼, 일본으로선 미국과의 밀월을 다지고 싶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NHK는 “일본은 자동차 관세 철폐에 대해 계속 미국과 협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이 25일(현지시간)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만나 미일 무역협정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뤘다.[AFPBB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