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정남 기자
2015.08.17 16:55:58
내년 총선 노리는 여야 의원들, 지역구 예산전쟁 사활
與, 기재부에 노골적으로 총선용 예산확대 요구하기도
朴정부 예산 '400조 시대'…국회서 균형재정은 먼 얘기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경기 수원갑 출마를 노리는 김상민 새누리당 의원(비례대표·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과 현재 이 지역구 이찬열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최근 비슷한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북수원권 인구가 급증해 북수원역사를 신설해야 한다면서 예산을 담당하는 방문규 기획재정부 제2차관에게 118억원 반영을 함께 요구한 것이다.
공동대응을 하는 것 같지만 두 의원의 속내는 다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엄연히 정치적으로 경쟁하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그 공(功)을 자신에게 돌리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찬열 의원은 북수원역사의 기본계획수립을 위해 노력해왔고 곧 완료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이 의원 측은 “그 성과가 새정치연합에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김 의원이) 관심있는 척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상민 의원의 입장은 완전히 다르다. 김 의원 측은 “기본계획수립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야당인) 이 의원 쪽에서 정부에 대응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현역 의원들 뿐만 아니다. 새누리당 수원갑 당협위원장인 박종희 전 의원도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 등을 만나 북수원역사 신설을 요청했다. 정부는 “신중 검토” “긍정 검토” 등 원론적 입장인데도 여야간 신경전은 한참 앞서고 있는 셈이다.
여야간 ‘예산전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특히 총선을 목전에 둔 시기여서 그 긴장감은 더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사회간접자본(SOC) 같은 경제예산 증액·신설 요구가 국가재정에는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7일 정치권에 따르면 내년 총선에서 각 지역구 출마를 준비 중인 정치인들은 기재부 등에 다양한 통로로 지역예산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통하는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전남 순천·곡성)은 최근 또다른 친박계 핵심인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따로 만나 예산을 요청했다. 순천만정원을 국가정원으로 공식 지정하고, 국가가 예산을 지원해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부총리는 “운영·관리비 지원에 대한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하면서도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여당 내 한 재선 의원은 “소위 ‘실세’인 사람이 나서면 정부부처에서도 알아서 나서준다”면서 “정부 부탁을 하나 들어주면 지역구 사업도 하나 살펴주는 식”이라고 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으로 임명되면 기재부 인사들과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한다. 여야가 재보궐선거 때마다 “후보가 당선되면 예결위에 넣겠다”고 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정현 의원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지역구 출마를 준비 중인 김광진 새정치연합 의원(비례대표)의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김 의원 측은 “(국가정원 지정의 근거가 되는) 수목원법 통과 자체를 야당이 주도한 것”이라면서 “우리쪽에서도 예산확보 노력을 하고 있다”고 했다.
정가 한 관계자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총선에서 어필하는 것은 예산이 가장 좋다”고 했다. 새누리당은 최근 정부와 예산안 당정협의에서 노골적으로 총선용 예산을 요구했다. 지난 총선 당시 공약사업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30%대 대부업 고금리를 부담해야 하는 저신용 저소득 서민들에게 10%대 중금리로 대출해주는 상품인 햇살론 관련예산을 2400억원 반영해달라고 못박기도 했다.
지역구 의원이 지역예산을 요청하는 것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문제는 여야가 나라곳간 사정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복지예산 등의 증액이 불가피한 마당에 박근혜정부가 강조하는 ‘예산개혁’의 대상은 경제예산이 유력하다. 국회 한 관계자는 “예산개혁이 지역구 예산을 손대는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는 의원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지난해 예산안 예비심사 당시 국회가 정부원안보다 더 늘리자고 요구한 규모가 9조8000억원 수준이었다.
내년에는 처음 정부예산 ‘400조 시대’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 올해 예산이 384조7000억원 수준인데, 새누리당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은 수준의 예산 편성을 요구한 까닭이다. 박근혜정부 들어서만 50조원가량 급증했다. 그에 맞춰 나라살림은 지난 3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다.
이 때문에 국회 안팎에서는 여야가 중장기적인 균형재정은 모르쇠로 일관한채 총선용 지역예산 챙기기에만 나선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예산 400조 시대를 맞아 예산 구조조정에 대한 종합검토를 국회에서 해야 하는데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면서 “이게 안 되면 대규모 SOC 사업도 별다른 사회적 합의없이 계속 추진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