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나비' 김복동 할머니…시민과 함께 한 마지막 길

by황현규 기자
2019.02.01 12:35:48

시민 6000명 '김복동 시민장' 참여
김 할머니 운구차 행진…"할머니 사랑합니다"
유언 "위안부 문제 끝까지 해결해달라"…망향의 동산 안치

일본의 공식 배상을 요구하며 싸워 온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황현규 조해영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상징으로 불리는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달 28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93세. 지난달 29일 오전 11시에 시작한 시민 장례식부터 2월 1일 영결식까지 김 할머니는 시민들의 배웅 속에서 영면했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치러진 시민장에는 지난달 29일부터 31일까지 약 6000여 명의 시민들이 빈소를 방문했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에 따르면 방명록 기준 △29일 1500여명 △30일 2500여명 △31일 2000여명의 시민이 김 할머니를 위해 조문했다.

지난 29일 교복을 입고 장례식장을 찾은 서울 은평구 선정국제관광고 학생 김지원(17)양은 “친구들 5명과 함께 할머니를 보내드리기 위해 왔다”며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할머니들의 아픔이 빨리 치유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김 할머니와 같이 위안부 피해를 당한 할머니들도 빈소를 방문해 슬픔을 나눴다. 길원옥 할머니와 이용수 할머니는 주변의 부축을 받으며 김 할머니의 장례식장을 방문했다. 두 할머니는 김 할머니와 함께 수요집회에 참가하며 위안부 피해 회복을 위한 활동을 해온 인물들이다.

이와 함께 정치인 등 유명인사의 조문도 줄을 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를 비롯해 △각 당 대표 △여성가족부·외교부 장관 △배우 나문희, 김희애, 이제훈 등이 빈소를 방문해 할머니의 가시는 길을 배웅했다.

1일 치러진 김 할머니의 영결식에도 시민들이 함께했다. 김 할머니는 이날 오전 6시 30분쯤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나와 생전 생활했던 평화의 우리집을 거쳐 오전 8시 40분쯤 시청광장에 도착했다. 시청광장에서 1.3km 떨어진 옛 일본대사관까지 이어진 운구차 행진에는 많은 시민들이 따라나섰다.

평화나비와 마리몬드 등 위안부 피해 관련 시민사회단체는 만장(애도의 글을 적어 만든 깃발)을 들고 운구차를 에워쌌다. 이어 운구차를 뒤따라 나선 시민들은 “할머니 사랑합니다”, “그 꿈을 이뤄드리겠습니다” 라고 외치기도 했다.



행진 중간에 김 할머니의 생전 육성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음성 속 김 할머니는 “우리가 이 돈 받으려고 싸웠나. 1000억원을 줘도 받을 수 없다”며 “평화의 나라가 돼 다시는 이 땅에 무차별한 인생이 생기지 말아야 한다”고 힘차게 말했다.

행렬은 오전 10시 5분쯤 매주 수요집회가 열리는 옛 일본 대사관 앞에서 멈췄다. 이곳에서 치러진 영결식에서 윤미향 대표는 “장례를 진행하는 동안 김 할머니가 우리 마음속에서 되살아나셨을 것이라고 느꼈다”며 “할머니의 죽음이 사람들로 하여금 행동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장례식 내내 마음을 모아 주신 시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발인이 엄수된 1일 오전 추모행렬이 서울광장을 출발해 일본 대사관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의연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1925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났다. 1940년 만 14세에 위안부로 끌려가 피해를 당한 김 할머니는 1947년 귀향했다.

김 할머니는 위안부 사실을 공식적으로 세상에 알린 인물로 평가된다. 1992년 최초로 유엔인권위원회에 파견돼 위안부 사실을 증언했고, 1993년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했다. 2000년에는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에서 원고로 참여해 피해 사실을 알렸다.

피해 사실을 고백한 이후 김 할머니는 피해자 인권 보호 활동에도 앞장섰다. 김 할머니는 2012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나비기금을 설립했다. 3년 뒤인 2015년에는 전쟁과 무력 분쟁 지역의 아이들을 위한 장학금 5000만원을 나비기금에 직접 기부했다.

특히 김 할머니는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냈다. 김 할머니는 암 투병 중이던 지난해 9월 휠체어에 몸을 싣고 외교부 앞에 나와 1인 시위를 펼치기도 했다.

한편 김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 윤미향 정의연 대표에게 “위안부 문제를 끝까지 해결해달라. 재일 조선학교 아이들을 지원하는 것도 끝까지 좀 해달라”는 말을 남겼다.

김 할머니는 충남 천안 망향의 동산에 안치될 예정이다. 망향의 동산에는 김 할머니에 앞서 떠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51분이 잠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