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폐→부실대응→메시지 혼선…백악관 비밀주의, 트럼프發 '코로나 쇼크' 키웠다

by이준기 기자
2020.10.05 17:00:00

"트럼프, 1차 검사 확진 판정 숨긴 채 일정 강행"…백악관 '쉬쉬'
공식 보고라인 아닌 최측근 중심 정보 통제…메시지 혼선 거듭
최측근들 "상태 좋다"지만…일각선 "심각한 것 아니냐" 못 믿어

코로나19에 감염돼 입원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차량을 타고 깜짝 외출을 하며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사진=AFP)
[이데일리 이준기 방성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확한 건강 상태를 놓고 서로 다른 설명이 나오며 혼선을 빚는가 하면, 이미 트럼프 대통령이 1차 양성 판정을 받고도 백악관이 이를 숨기는 데 급급했던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이너서클(내부조직) 내 비밀주의가 은폐·부실 대응을 초래하고, 이는 곧 엇갈린 백악관발(發) 메시지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11월3일 미 대선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 확진 판정으로 가뜩이나 불리한 조건에 처한 상황에서 또다시 초대형 악재들이 겹겹이 쌓이는 형국이다.

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백악관은 통상 30분 내에 결과가 나오는 코로나19 신속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경우 비강에서 표본을 채취하는 2차 테스트, 이른바 유전자검사(PCR)를 실시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2차 검사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시각은 지난 2일 새벽 1시께다. 2차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을 감안하면 1일 밤늦게 진행된 폭스뉴스와의 인터뷰는 이미 1차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뒤 수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이뤄진 셈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인터뷰에서 “(2차) 검사 결과가 오늘 밤이나 내일 아침에 나올 것”이라고 했다. 만약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은 1차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고도 이를 숨긴 채 예정된 일정을 소화했다는 얘기가 된다.

1차 신속 테스트 결과 음성 판정이 나오면 2차 테스트 결과는 달라질 수 있지만, 양성 판정을 받았을 경우는 정확도가 매우 높은 편이라는 미 식품의약국(FDA)의 설명에도 배치되는 행동이다.

이 같은 은폐·부실 대응 의혹에 무게가 실리는 건 숀 콘리 대통령 주치의가 지난 3일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확진을 받은 지 36시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72시간이 됐다”고 언급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후 콘리 주치의가 “말실수”라고 해명했으나 이미 트럼프 대통령의 최초 확진 시점을 놓고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태로 상황은 전개됐다. 이러한 보도에 대해 백악관 측은 답변을 거부했다고 WSJ은 설명했다.

이번 논란은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싼 이너서클의 이른바 ‘비밀주의’에서 잉태됐다는 게 정설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최측근들로만 구성된 이너서클은 백악관 내 잇따른 확진에도 ‘쉬쉬’하는 데 급급했다. 1일 오전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호프 힉스 보좌관의 확진 판정을 트럼프 재선 캠프의 빌 스테피엔 선대본부장조차 알지 못했다는 게 대표적이다. 이렇다 보니, 백악관 발 메시지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통령 주치의인 션 콘리 박사는 3일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증세가 호전되고 있다고 밝혔는데, 바로 몇 분 뒤 마크 메도우 백악관 비서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상태가 우려스럽다고 말해 혼선을 빚은 게 단적인 예다.

한 행정부 관료는 WSJ에 “웨스트윙(대통령 집무동)의 누구도 공식 소통을 하지 않아 트위터와 TV에 의존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 이어 대통령직 승계서열 2위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조차 “공식 브리핑이 아닌 언론보도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감염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현 백악관의 시스템이 정식 보고라인이 아닌 이너서클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실 현 상황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입원 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비서실장의 “대통령 상태가 우려스럽다”고 언급한 데 대해 매우 격노했다고 한다. 그는 즉각 한 참모에게 전화를 걸어 “어떤 빌어먹을 놈이 그런 말을 한 것이냐”며 ‘f’로 시작하는 비속어까지 써가며 따져 물었는데,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은 이너서클 내 비밀주의를 더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는 분석이다.

미국민들로선 과연 ‘트럼프 대통령의 건강 상태가 괜찮다’는 최측근들과 의료진의 전언에도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이날 미국의 안보사령탑인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좌관은 CBS방송에 “트럼프 대통령의 (건강 상태)는 매우 좋다. 백악관으로 돌아와 업무에 복귀하고 싶어한다”고 했고, 콘리 주치의 등 의료진도 기자회견에서 “이르면 5일 퇴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의료진이 트럼프 대통령의 산소보충 치료를 언급했던 데다, 중증 환자에 쓰이는 덱사메타손 복용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이들 전언에 대한 사실 여부도 도마에 올랐다.

의료진은 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2일 한때 혈중 산소농도가 94% 이하로 떨어졌고, 1시간가량 산소보충 치료를 받았다. 3일에도 93%까지 내려가 모니터링을 강화했다”고 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혈중 산소농도는 98%로 확인됐다. 정상인의 혈중 산소농도는 95~100%다. 덱사메타손은 코르티코스테로이드의 일종인 염증 치료제로, 코로나19 중환자 사망률을 상당히 낮출 수 있지만, 인체 면역력을 억제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중증 환자들에게만 권장되는 약물이다. 워싱턴포스트(WP)·폴리티코 등 미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상태가 양호하다는 백악관의 설명과는 상반된 치료를 받았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