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주지훈·전지현의 지리산 해동분소가 북한산에 있는 이유
by김경은 기자
2021.11.11 23:00:00
북한산특수산악구조대 드라마 지리산 실제 모델 인터뷰
북한산, 사고발생 가장 많은 국립공원
이치상 구조대장 "급한 사고는 구조대에 직접 전화달라"
"4계절을 만날 수 있는 산…보온 대비 철저해야"
"조난시엔 휴대폰 가능한 능선으로 이동해야"
[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서울에 올해 첫 눈이 내린 지난 10일 북한산엔 이미 사흘째 눈이 내려 쌓이면서 인수봉 암벽 사이가 하얗게 갈라졌다.
CCTV 화면을 통해 비친 북한산의 이른 눈은 이치상(55) 북한산특수산악구조대장의 눈엔 걱정거리다. 그의 인삿말은 “오는 길이 미끄럽진 않았습니까”였다.
최근 2030세대 사이에서 등산의 인기가 높아지고 등산을 주제로 한 드라마 ‘지리산’의 방영 등으로 국립공원공단 산악구조대 레인저들이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이데일리는 이날 북한산백운대탐방센터에서 30분 가량 올라야 도착하는 해발 488m에 위치한 북한산특수산악구조대 사무소에서 드라마의 실제 모델인 이치상 대장과 김민철(32), 김연평(48) 대원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북한산 백운대 정상을 찾는 등산객이라면 필수적으로 거치는 코스인 ‘북한산산악구조대’는 고지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해 옛 인수대피소 자리에 세워졌다. 구조대 사무소는 북한산 곳곳을 비추는 6대의 CCTV화면과 실시간 기상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스크린이 한 벽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대장은 수시로 화면을 보면서 기상상황에 따른 산의 상황을 관찰하고, 변화를 찾아냈다.
| 인기 드라마 ‘지리산’의 실제 모델인 북한산특수산악구조대의 이치상(가운데) 대장과 김민철(왼쪽), 김연평 대원이 지난 10일 서울 북한산특수산악구조대 사무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이데일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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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은 김은희 작가와 이응복 PD가 연출을 맡고 전지현, 주지훈, 성동일 배우 등 국내 내로라하는 연출진과 배우들이 총출동해 방영전부터 화제를 모은 드라마다. 드라마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지리산 해동분소가 바로 북한산특수산악구조대다.
국립공원마다 구조대가 있긴하나 암벽 구조 등 구조 전담 조직은 국립공원공단에서 북한산특수산악구조대가 유일하다. 설악산과 지리산에서 활동했던 이들을 비롯해 다양한 경력의 산악구조 전문가들로 모여있다. 김 작가가 시나리오에 참고했던 인물들도 이들이다. 여기에 드라마의 여러 조난 에피소드는 손경완 산악안전교육원 과장이 10년간 설악산 구조활동을 펼치며 작성했던 구조수첩 10여권에서 탄생했다.
이 대장은 “사고가 발생하면 대부분이 119로 신고하는데, 고지대 사고는 우리가 더 신속하게 접근해 처리가 가능하다”며 “북한산 등반객들은 북한산산악구조대 전화번호(‘인수대피소’로 인터넷 검색)를 저장해 두고 급한 사고시 바로 우리에게 전화를 하는 게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15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북한산 국립공원은 연간 방문객이 500만명대 수준인데 코로나19로 수도권 근교 등산객이 늘면서 지난해 방문객은 전년 대비 18%(99만명)증가한 656만명을 기록했다. 서울 강북·도봉·성북·종로·은평구, 경기도 의정부·고양·양주시 등에 걸친 총 면적은 78.5㎢에 이른다. 거대한 화강암 암벽으로 이뤄진 북한산은 면적당 방문자가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많고, 산세가 거칠어 사고발생률도 가장 높다. 이에 구조대 인원만 23명으로 국립공원 구조대 중 가장 많다. 이들은 2019년 2월 경찰 산악구조대가 없어지고 북한산특수산악구조대가 생기면서 처음 모였다.
이 대장은 대학 산악회부터 등반을 시작해 엄홍길, 고(故) 박영석 대장과 8000미터급 해외원정을 6군데 다닌 산악인이다. 북한산이라면 비법정탐방로 샛길까지도 머리속에 꿰고있다. 성동일 배우가 맡은 해동분소 구조대장역의 실제 인물이다. 그는 “제 경험이 구조대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대장직을 수락한 것”이라며 “산악인들에겐 상징적인 장소인 북한산 인수봉과 백운봉을 지키는 건 산악인으로서 큰 명예”라고 말했다.
구급처치, 수색, 암벽등반 등 산악구조에 필요한 기본적인 자질은 모든 대원들이 갖추고 있지만 대원마다 주특기는 따로 있다. 김민철 대원은 우리나라 아이스클라이밍 국가대표로 구조 사고가 발생하면 선등에 서 길을 찾는 역할을 한다. 각종 응급처치 자격증을 소지한 김연평 대원은 구급 소방대가 도착하기 전 신속한 구급처치를 맡고 있다.
이들에게 체력은 기본이다. 일반인들은 1시간 남짓 걸리는 사무소에서 백운대 정상까지의 거리를 대원들은 15kg 무게의 구조용 베낭을 메고서도 평균 25분정도에 도착한다. 이 대장은 “평가시험이 아닌 실제 상황이 발생하면 더 빠르게도 올라간다”며 “4분의 골든타임안에 도착해야하는 심정지 환자가 발생하면 내가 숨이 넘어가는 한이 있어도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뛰어 올라가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 2년 동안 2명의 심정지 환자를 구급헬기가 도착하기전까지 심폐소생술을 통해 살려냈다.
대원들 대부분은 고지대 특수구조업무에 따른 잦은 부상과 무릎과 발목에 고질병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대원 대부분은 쉬는 날마저 산에 오른다. “그냥 산이 좋아서 산악구조대에 지원했다”는 김민철 대원은 “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때가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연평 대원은 “조금 더 일찍 이 일을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만큼 보람있는 직업”이라고 했다.
국립공원 구조대는 산에 오른 사람들을 지키기도 하지만, 사람들로부터 산을 지키기도 한다. 국립공원공단 구조대의 목적 가운데 생태보존의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구조 외에 불법행위를 단속하는 특수경찰과 등산로 시설물 안전관리 업무도 겸한다.
조난 사고가 발생했을 때 핸드폰은 생명줄이다. 북한산은 전지역에서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해 조난사고 비율은 높지 않은 편이다. 작년 초부터 지난 10월까지 174건의 출동건수 중 조난사고는 4건에 불과했다. 거의 대부분이 골절 의심 사고다.
하지만 설악산이나 지리산 같은 넓은 산은 불통구간이 아직 많아 수색기간이 열흘 이상 길어지며 불의의 인명사고도 잦은 편이다. 특히 눈이 많이 내려 등산로가 사라지는 겨울엔 대형조난사고도 자주 발생한다.
산에서 등산로를 이탈해 길을 잃은 경우엔 휴대전화가 터지는 능선으로 오르는 게 좋고, 가족에게 수시로 사진 등을 전송해 두는 것도 조난자의 동선 파악에 도움이 된다. 조난을 당했다고 판단되면 무턱대고 하산길을 찾아 다니는 것이 적당한 대피장소에서 구조대를 기다리는 것보다 최악의 사고로 이어질 확률이 더 높다.
손경완 과장은 “여름철에도 산에선 4계절을 모두 만날 수 있다”며 “산행을 할 때는 추위에 대비한 보온 옷과 도구들을 준비해 가야 한다”고 요령을 소개했다. 이 대장은 기본적으로 챙겨야할 장비로 배낭, 등산복, 등산화, 랜턴, 간식, 물, 여벌옷 등을 추천했다. 실제 최근 사흘사이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면서 설악산에서 30대 남성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등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