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의존 낮추고 아세안·중남미 개척’ 공급망 재편전략…한중 우호 저해 우려도

by김형욱 기자
2022.11.23 19:20:00

윤석열 대통령 주재 제1차 수출전략회의
美·EU발 공급망 재편 맞춰 다변화하기로
아세안·중남미 자원 강국 협력 강화 나서
中서 기회 놓칠수도…"실리외교 나서야"

[이데일리 김형욱 박태진 기자] 정부가 한국 주요산업 공급망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아세안(동남아)과 중남미 등 시장으로 다변화하기로 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의 공급망 탈(脫)중국 움직임에 맞춰 한국 주력산업의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밑그림이다.

이 같은 공급망 재편 전략이 자칫 우리의 최대 수출 상대국인 중국을 자극해 모처럼 만의 한·중 우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공급망 재편과는 별개로 실리 외교를 펼쳐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제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서 열린 제1차 수출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산업통상자원부는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23일 서울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서 열린 수출전략회의에서 이 같은 공급망 다변화 전략을 담은 주요 수출지역별 특화전략 및 수출지원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한 대응이다. 우리 기업의 중국 생산기지의 국내 혹은 제삼국 이전으로 중국에 편중된 공급망 리스크를 완화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지금껏 추진해 온 국내 복귀 기업 지원에 더해 제삼국으로의 재배치도 직·간접 지원키로 했다. 대중 의존도를 급격히 줄이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공급망 조기경보시스템(EWS)을 통한 공급망 위기대응 체계도 강화하기로 했다.

아세안과 중남미 등 타 지역에 대한 공급망 협력은 강화하기로 했다. 아세안 지역에선 베트남에 몰려 있는 공급망을 자원 부국인 인도네시아와 태국 등 다른 아세안 국가로 확대하기로 했다. 또 리튬 세계 매장량 1·3위인 칠레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멕시코 등 중남미 자원 부국과의 광물 협력도 강화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멕시코와 멕시코 등 중남미 4개국 연합인 태평양동맹(FTA), 에콰도르, 메르코수르 등 주요 중남미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도 본격 추진한다.

우리 산업 경쟁력 유지·강화를 위해선 이 같은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중국 공급망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코로나19 대유행 초기인 2020년 중국 공장에서의 와이어링 하네스 공급 차질로 국내 완성차 공장이 차질을 빚었고, 지난해는 중국의 요소수 수출 금지로 국내 경유차 운행 대란을 빚었었다.

특히 올 들어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시행하면서 전기차 생산 과정에서 중국 등 비우호국 부품·소재 공급 비율을 사실상 제한하는 등 대(對) 중국 견제 정책을 노골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이와 비슷한 핵심원자재법(RMA)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 공급망 의존도를 줄이는 게 미국, EU 등 주요시장 수출 경쟁력 유지를 위한 필수 과제가 된 것이다.



정부는 이 같은 공급망 재편으로 미국·EU 등 주요국의 통상정책 변화에 대응해 국내 기업의 피해를 막는 동시에 미국이 추진하는 대규모 인프라·친환경 투자계획에 참여해 오히려 수출 확대 기회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상대국 정부가 사회적 자원을 틀어쥐고 성장 전략을 세우고 자원 배분을 직접 해나간다면 우리도 정부가 상대국 정부와 협의하고 조율해야 우리 기업이 (상대국에) 들어갈 수 있다”며 “글로벌 스탠다드와 다른 독특한 규제 여건이 있다면 정부가 직접 대응해 문제를 풀고 협상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이 같은 공급망 재편 전략이 자칫 우리의 최대 수출 대상국인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하리란 우려도 있다. 지난 15일 윤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만남으로 모처럼 만들어진 한·중 우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은 중국 정부의 코로나 봉쇄 정책 등 여파로 대(對)중국 수출 상황이 좋지 않지만, 중국 경기가 회복될 때를 대비해 실리 외교를 펼쳐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제언이다.

중국은 코로나 봉쇄정책 여파로 올 2분기 경제성장률이 0.4%까지 떨어졌으나 3분기 이후 3%대 성장률을 회복했고 내년에도 4%대 이상의 성장이 예상된다. 최근 들어 큰 폭 감소한 우리나라 대중국 수출도 중국 경기 회복과 함께 다시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공급망 재편을 이유로 중국 진출기업의 제삼국 이전을 독려할 경우 자칫 실익 없이 기회만 놓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중국 진출 기업이 제삼국으로 옮긴다고 한국 수출·일자리가 늘어나는 건 아니고 중국 의존도를 극단적으로 낮춰버리면 자칫 중국의 경기 회복 때 수혜를 못 볼 수 있다”며 “정부는 인위적으로 공급망 재편을 유도하기보다는 현 한·중 우호 분위기를 살려 실리 외교를 펼쳐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정부 역시 공급망 글로벌 재배치 전략과는 별개로 유망 산업을 중심으로 중국 진출에 대한 지원은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공급망 재배치가 탈중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중국의 최근 소비 트렌드와 탄소중립 정책에 맞춰 의료기기나 헬스케어, 영유아 교육, 패션, 밀키트, 친환경 산업 같은 수출 지원은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양국 정부 간 분야별 고위급 협력 채널도 정례적으로 열고 민간 교류 활성화도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 한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