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 사주 '부실 수사' 논란에 폐지론 거세지는 공수처

by이배운 기자
2022.06.14 18:03:07

공수처, 존재 가치 증명할 기회 또 놓쳐
고발 사주 피의자는 신병 확보 3차례나 시도
제보 사주는 박지원 한 차례 서면 조사로 수사 종료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자수사처(공수처)가 ‘제보 사주’ 의혹 수사도 빈손으로 마무리하면서 폐지론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제보 사주 의혹 수사는 공수처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기회였지만 오히려 ‘편향·부실 수사’ 논란만 남기면서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청사 전경 (사진=연합뉴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 수사2부(부장검사 김성문)는 전날 조성은 씨와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고발 사주’ 의혹 제기를 사전에 모의했다는 ‘제보 사주’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다.

앞서 고발 사주 의혹 제보자인 조 씨는 해당 의혹을 언론에 제보하기 한 달 전 롯데호텔에서 박 전 원장과 두 차례 만남을 가졌고, 박 전 원장과 만나기 전날 고발 사주 의혹 관련 자료 110여 건을 다운로드 받은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빚었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 캠프는 박 전 원장과 조 씨가 고발 사주 의혹에 관한 언론 제보를 사전에 모의했다며 지난해 9월 고발장을 제출했고 공수처는 그 다음달 사건을 정식 입건했다.

하지만 ‘고발 사주’와 ‘제보 사주’ 두 사건을 대하는 공수처의 태도는 달랐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이 연루된 고발 사주 사건은 고발장 접수 나흘 만에 입건하고 의혹 당사자들에 대한 강제 수사에 돌입했다. 특히 의혹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검사에 대해 3차례나 신병 확보를 시도하고 같은 부서에서 근무한 직원들을 상대로 여러 차례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혐의 입증에 공을 들였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접수된 제보 사주 고발 건은 접수된 지 3달이 지나도록 수사팀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조 씨를 단 한 차례 소환 조사하는 데 그쳤다. 공수처가 정치적 중립성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보여 주기식 입건’을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 대목이다. 이에 윤 캠프 측은 두 사건을 공정하게 수사해 달라는 의견서를 공수처에 제출했고, 한 시민단체는 김진욱 공수처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공수처는 제보 사주 의혹 수사를 진행한 8개월 동안 박 전 원장에 대한 소환 조사 없이 한 차례 서면 조사만으로 “피의자들이 협의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사건을 일단락 지었다.

법조계는 공수처가 이 사건 수사 성과로 정치적 편향 논란을 불식시키고 수사력을 입증할 기회로 삼을 수 있었지만, 오히려 부실·편향 수사만 했다며 비판하고 있다.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지낸 이헌 변호사는 “공수처는 그동안 여러 사건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부실 논란을 빚었고 이번 제보 사주 수사도 비슷한 평가를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며 “공수처 폐지론은 갑작스럽게 형성된 여론이 아니라 국민적 불신이 누적된 결과”라고 비판했다.

공수처의 앞날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부정적인 여론을 뒤집을 만한 마땅한 카드가 없는 가운데 여권을 중심으로 ‘폐지론’이 거듭 제기되는 탓이다.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인은 지난 10일 페이스북에 “무능하고 아무런 기능도 행사하지 못하는 공수처가 아직도 잔존하면서 국민 세금이나 축내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공수처 폐지론’을 재점화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공수처 제도에 대해 국민의 회의가 있다고 한다면 폐지를 추진하겠다”며 조건부 폐지론을 거론했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인사청문회 당시 “공수처가 다른 수사 기관 간 갈등을 유발한다면 개선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며 공수처 권한 축소를 암시하기도 했다.

다만 실제로 윤석열 정부 초반에 공수처 폐지 등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공수처법 개정은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반대에 부딪힐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공수처를 검찰 개혁의 대표적인 성과로 꼽으며 검찰 권력 견제 역할을 강조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