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현실' 고찰한 韓 현대문학 거목 최인훈 별세(종합)
by이윤정 기자
2018.07.23 14:57:46
직장암 말기 투병 중 타계
대표작 ''광장''…"시대의 ''서기''로서 쓴 것"
한국 분단 현실 문학적으로 성찰
''회색인'' ''화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등
| 소설 ‘광장’ 등으로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작가 최인훈이 23일 오전 10시 46분 별세했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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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분단시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최인훈이 23일 오전 10시 46분 별세했다. 향년 84세.
고 최인훈 작가는 4개월 전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경기도 고양시 명지병원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대표작 ‘광장’…한국문학 새지평 열어
1934년(공식 출생기록은 1936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고등학교 재학 중 한국전쟁이 발발해 월남했다.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6학기를 마쳤으나 전후 분단 현실에서 공부하는데 갈등을 느끼고 1956년 중퇴했다. 1959년 군 복무 중 쓴 단편소설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을 ‘자유문학’지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듬해 4·19혁명이 있었고 7개월 뒤인 1960년 11월 ‘새벽’지에 중편소설 ‘광장’을 발표했다. 이 소설은 발표 직후부터 문단 안팎에 적잖은 파장을 가져왔다. 전후 한국문학의 지평을 새롭게 연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되며 지금까지 널리 읽힌다. 출간 이후 현재까지 통쇄 204쇄를 찍었고,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최다 수록 작품이라는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고인은 자신의 대표작 ‘광장’에 대해 “4·19는 역사가 갑자기 큰 조명등 같은 것을 가지고 우리 생활을 비춰준 계기였기 때문에 덜 똑똑한 사람도 총명해질 수 있었고, 영감이나 재능이 부족했던 예술가들도 갑자기 일급 역사관이 머리에 떠오르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광장’은 내 문학적 능력보다는 시대의 ‘서기’로서 쓴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저명한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은 “정치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이었지만, 소설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광장’의 해이었다고 할 수 있다”고 평했다. ‘최인훈 전집’을 낸 문학과지성사 이광호 대표는 “‘광장’의 위대성은 그것이 단지 분단 현실에 대한 의미 있는 문학적 증언이기 때문만이 아니다”라며 “‘광장’은 완료형으로서의 역사를 기술하기보다 역사의 고고학적 심층을 사유하고, ‘다른 역사’를 꿈꾸는 힘으로서의 정치적 상상력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데올로기 대립 ‘분단 현실’ 성찰
‘광장’을 필두로 최 작가는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는 분단 현실을 문학적으로 치열하게 성찰했다. 전망이 닫힌 시대의 존재론적 고뇌를 그린 ‘회색인’(1963),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파격적인 서사 실험을 보인 ‘서유기’(1966), 신식민지적 현실의 위기의식을 풍자소설 기법으로 표현한 ‘총독의 소리’(1967~1968) 연작, 20세기를 전면적으로 문제 삼으며 동시대인의 운명을 조망한 대작 ‘화두’(1994)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밖에도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태풍’ 등의 소설과 희곡집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산문집 ‘유토피아의 꿈’, ‘길에 관한 명상’ 등을 냈다. 2003년 계간지에 발표한 단편 ‘바다의 편지’를 끝으로 새 작품을 내지 않았다.
고인의 이름은 해외에도 잘 알려져있다. ‘광장’은 영어·일본어·프랑스어 등 6개 국어로, ‘회색인’과 ‘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는 영어와 러시아어로 번역·출간됐다. 동인문학상(1966),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1977), 중앙문화대상 예술 부문 장려상(1978), 서울극평가그룹상(1979), 이산문학상(1994), 박경리문학상(2011) 등을 받았다.
1977년부터 2001년 5월까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많은 문인 제자를 배출했으며 퇴임 이후에도 명예교수로 예우받았다. 대학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았음에도 정작 본인은 대학 졸업장을 받지 못한 데 대해 “열악한 환경에서도 최상의 혜택을 줬는데도 누리지 못한 그때의 내가 너무 밉다.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크다”고 깊은 회한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 얘기를 들은 서울대는 지난해 2월 그에게 명예 졸업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원영희 여사와 아들 윤구, 윤경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문학인장’으로 치러진다. 영결식은 25일 오전 0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내 강당에서 열린다. 발인은 영결식 이후, 장지는 ‘자하연 일산’(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지영동 456)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