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터전 무너질까"…산사태 예보에 서울 산지 주민들 '긴장'
by공지유 기자
2020.08.11 16:48:18
11일 오전 서울 중랑구·도봉구·성동구 등에 산사태주의보 발령
주민들 "가끔 비 차올라…수해 두려워"
전문가들 "전국 산지 위험…선제적 대피 필요"
[이데일리 공지유 기자] 예측하기 어려운 폭우가 쏟아지면서 취약지역 주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특히 남부지방에서 큰 인명·재산 피해를 입힌 산사태가 서울에서도 우려된다는 예보가 나오면서 산지 인근에 삶의 터전을 둔 주민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 11일 오전 서울 도봉구 북한산국립공원 입구에 ‘기상특보로 발효로 입산을 통제한다’는 안내가 붙어 있다. (사진=공지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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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서울 도봉구에는 밤새 쏟아지던 비가 채 그치지 않고 내렸다. 도봉산 등산로 입구에는 소수 상인이 영업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길에 늘어진 노점상 중 상당수가 문을 닫았다.
등산로 초입에서 등산용품을 판매하는 상인 A씨는 “밤새 비가 많이 내리고 입산도 금지돼 손님이 별로 없다”며 “곧 장사를 접고 돌아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인근 상인 B씨도 “혹시 몰라 나오긴 했는데 아무래도 위험하니 그냥 영업을 접고 돌아가려고 한다”며 “천막 하나로 장사를 하니 산사태가 일어나면 다들 큰일”이라고 언급했다. 몇몇 노점상들은 비가 계속 내리자 노점을 정리한 뒤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날 오전부터 서울 중랑구·도봉구·성동구·서대문구·노원구에서는 산사태 주의보가 발령됐다. 이에 따라 북한산국립공원과 도봉산 일대의 입산이 통제됐지만 등산객들이 꾸준히 등산로를 찾기도 했다. 산사태 취약지역 주민들은 이번 장마가 예상하지 못하게 길어지고 있는 만큼 산사태 등으로 큰 피해를 입을까 두렵다고 입을 모았다.
도봉구 쌍문동에 거주하는 김모(27)씨는 “가족들끼리 자주 가는 뒷산이 있는데 얼마 전 산에 올랐다가 갑자기 비가 와 무릎까지 물이 차올라서 무서운 마음에 서둘러 내려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인근 뒷산이 자주 가는 생활공간이었는데 뉴스에서 산사태가 일어나는 걸 접하고 매일 위험 안내문자가 오니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두려워 가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등산로 부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50대 박모씨도 “지금은 비가 그쳤지만 요새 예보와 다르게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경우도 많아 항상 걱정이 된다”며 “먹고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장사를 하는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 11일 오후 서울 노원구 수락산을 찾은 시민들이 산을 오르고 계곡에서 수영을 하고 있다. (사진=공지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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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비가 그치자 입산이 허용된 산들에는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11일 오후 서울 노원구 수락산에서는 10대 학생들이 튜브를 착용하고 계곡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들에게 산사태주의보 등 위험 경보는 주의 대상이 아닌 듯 했다. 수락산을 찾은 등산객 김모(61)씨는 “비도 그쳤고 이 근처는 별로 위험하지 않아 괜찮다”며 산을 올랐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이모(44)씨는 “아침에 아이를 학원에 보낼 때까지만 해도 비가 쏟아지더니 지금은 별로 오지 않아 잠시 산책을 나왔다”며 “워낙 산사태 등에 잘 대비를 해서 큰 걱정은 없다”고 말했다.
서울 도봉구, 강북구는 이날 오후 산사태주의보 발령이 해제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게릴라성 호우가 계속되는 만큼 장마가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는 인명피해에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림청은 10일 “누적된 강우가 전국적으로 많은 가운데 태풍까지 북상하고 있어 전국 어느 지역이나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며 “과하다 싶을 정도의 선제적인 사전대피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도 “아직 땅이 비를 머금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땅이 완전히 마르기 전까지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특히 이번 집중호우가 게릴라성인 만큼 비가 잠시 그쳐도 장마가 끝나기 전까지 등산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기상청에 따르면 서울·경기와 강원 영서의 경우 오는 16일까지 장마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