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도 버거운데…트럼프發 방위비 청구서도 날라오나

by김인경 기자
2025.04.09 15:28:27

한덕수-트럼프 통화 후 트럼프 '원스톱 쇼핑' 언급
작년 말 SMA 협상 완료했지만 재협상 대비 서둘러야
민감국가 해제에 상호 관세까지 카드 많지 않은 韓
美 무기 수입·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등 활용 목소리도

[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전화에서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관세와 연동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지난해 대선 유세부터 한국을 ‘현금인출기(머니머신·Money Machine)’이라 칭하며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100억달러(14조 8000억원)로 부른 바 있다. 한국 시간으로 9일 오후 1시 1분부터 발효된 상호관세(25%)에 민감국가 해제까지 해결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힘들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국무총리실 제공]
9일 총리실 고위관계자는 전날 한 대행과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통화에 대해 설명하며 “트럼프 대통령은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본인(트럼프)이 1기에 만든 것을 왜곡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 시절 협상을 해 지난해 말 우리 국회를 통과한 2026~2030년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이 무효화되고 재협상에 들어갈 수 있다는 대목이다.

한·미 양국은 지난해 말 2026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전년보다 8.3% 올린 1조 5192억원으로 정하는 제12차 SMA를 타결한 바 있다. 2027년부터 2030년까지는 현행 국방비 증가율이 아닌 소비자물가지수(CPI) 증가율을 연동시키되 연간 인상률이 최대 5%를 넘지 않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우리 정부는 분담금 협정이 이미 발효됐다는 점을 내세워 대응할 것으로 보이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한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무역이나 관세와 관련 없는 사안도 (상호 관세 협상 과정에) 그들이 거론하도록 하고 있다. ‘원스톱 쇼핑(Onestop-shopping)’은 아름답고 효율적”이라고 썼다. ‘원스톱 쇼핑’은 여러 사안을 관세 협상에 한꺼번에 묶어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뜻하는 것이다. 15일부터 발효되는 ‘민감국가’ 목록에서 한국을 제외해야 하는 데다 25%에 달하는 관세 타격까지 맞은 한국으로서는 대응해야 할 과제가 너무 많다.



총리실 고위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원스톱이라고 한 건 패키지로 빨리 (협상이) 이뤄지는 것이고 굉장히 열려 있다는 의미로 이해했다”며 관세와 방위비 ‘패키지 협상’에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을 시작한 이상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에 대한 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 역시 “방위비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우리의 안보를 더욱 강화하는 방식으로 협상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산 무기를 사들여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 삼는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는 동시에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에도 대응하며 제3의 해법을 찾아볼 수 있다는 얘기다.

방위비 인상 압력을 이어가는 미국의 확장억제 정책에 우리 국방력을 의존하기 힘든 만큼, 핵 잠재력 확보를 요구해 협상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한국은 국내에서 25기의 원전을 가동 중이지만 매년 700t 가까이 쏟아지는 사용후핵연료를 독자적으로 재처리할 권한이 없다. 2015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에서 재처리를 금지하고 있어서다.

이성우 경기연구원 글로벌지역연구실장은 “현재 한국은 통상이나 관세, 민감국가 등 각 현안 모두 대응하기 급급하다”면서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비롯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등을 염두에 두고 포괄적인 협상 전략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작년 실시된 한미 연합 도하훈련에서 한국 K808 장갑차가 육군 7공병여단과 미2사단이 구축한 부교(浮橋)를 건너는 모습[연합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