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법적 대책없이 세운 KDB인베…대우건설 매각도 공정성 미흡"
by김인경 기자
2025.03.06 14:00:00
감사원, 산업은행 부실여신 중심 정책자금 운영 감사 발표
'수의계약' 불가 알면서도 KDBI 설립…시장과 마찰 초래
대우건설 매각시 2000억 깎아줘…손실에도 성과급 파티
코로나19 특별자금, 인건비체불·카드 연체 등에도 지원
[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산업은행은 2018년 대우건설의 매각에 실패한 후 구조조정 기업 매각을 전담할 KDB인베스트먼트(KDBI) 설립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산업은행은 보유하고 있는 구조조정기업 지분을 KDBI에 안정적으로 매각하기 위해선 ‘수의계약’이 필요하다고 봤지만, 계약법령상 경쟁입찰이 원칙이고, 수의계약 매각은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수의계약으로 개정이 가능한지 여부를 기획재정부와 협의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개정 승인 가능성이 작다는 것을 판단하면서도 이듬해 KDBI를 설립했다.
결국 대우건설 후 두 번째 매각 대상인 한진중공업은 수의계약이 아닌 공개경쟁입찰을 진행했고 그 결과 한국토지신탁-NH PE 컨소시엄에 밀려 KDBI는 낙찰받지 못했다. 그제야 산업은행은 구조조정기업을 수의계약으로 KDBI에 이관하는 방안을 요청했지만, 결국 불가능하다는 답만 받았다. 결국 KDBI는 대우건설 이후 현재까지 구조조정기업을 인수하지 못하고 있고 설립목적과 달리 상업적 성격의 사모펀드 운용사로 운영 중이다.
5일 감사원은 산업은행의 부실 여신을 중심으로 정책자금 운영실태 주요감사결과를 발표했다. 감사원은 “최근 고금리 기조로 인해 기업들의 금융 부담이 가중되는 등에 따라 산업은행이 정책금융기관으로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성이 제기됐다”며 “여신심사, 구조조정, 투자 및 대출 등 운영실태 전반을 조사했으며, 총 20건의 위법·부당 사항을 적발했고 해당 조사결과를 지난 1월 13일 감사위원회의에서 확정·의결했다”고 말했다.
특히 감사원은 구조조정 전담 자회사인 KDBI가 설립목적과 달리 운영되고 있는 점을 문제로 삼았다. 2019년 설립된 KDBI는 구조조정기업의 매각전담 자회사로 출발했다. 당초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등 모든 구조조정기업을 KDBI에 이관, 매각하는 방식으로 구조를 개편할 계획이었지만 산업은행이 보유한 기업 대다수는 국가계약법령 적용대상이라 ‘수의계약’이 불가능했고, 경쟁입찰을 해야만 했다. 당시 산업은행은 이를 인지하면서도 ‘법적 대책 없이’ KDBI를 설립했다는 게 감사원의 평가다. 2022년에야 산업은행은 구조조정기업 매각을 불가피한 수의계약 사유로 인정해달라고 금융위에 요청했지만, 금융위는 ‘불가’ 통보를 했다. 결국 대우조선해양이나 HMM 등 구조조정 기업의 매각은 여전히 산업은행이 ‘직접’ 수행하고 있고 KDBI는 현재 산은인베스트먼트로 이름을 바꿔 상업적 성격의 사모펀드 운용사로 운영 중이다.
감사원은 “KDBI는 산업은행 PE실이나 금융자회사인 KDB캐피탈 등과 기능이 중복되는데다 민간 자산운용사처럼 국내 기업의 해외 계열사의 전환우선주에 재무적투자자(FI)로 참가해 상장 후 자금을 회수하는 상업적 성격의 사모펀드를 조성·운용하고 있다”며 “시장과 마찰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KDBI가 구조조정 역할을 한 대우건설 매각 입찰 과정에서의 공정성과 투명성 문제도 지적됐다. 산업은행의 특수목적법인(SPC)인 ‘KDB밸류 제6호 SPC’는 2011년 3조 2000억원을 투입해 대우건설 지분 50.75%를 확보한 후, 2019년 7월 KDBI에 1조 4000억원의 가격을 받고 매각했다. 이후 KDBI는 구조조정을 위해 제한경쟁입찰을 진행했는데 중흥건설은 2조 3000억원(주당 1만 1200원)을 써내 DS컨소시엄(1조 8000억원)을 제치고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중흥건설이 2위와의 가격 차이가 5000억원이나 난 데 대해 불만을 제기하며 인수 포기 카드를 내밀었고 KDBI는 매각을 성사시키기 위해 이례적으로 재입찰 결정을 내렸다. 당시 중흥건설은 주당 1만 1200원으로 제시한 입찰가를 주당 9300원으로 낮추겠다고 밝혔고, KDBI는 주당 1만원을 제시하며 양측은 사전 합의, 1차 입찰가보다 2000억원 낮은 2조 1000억원으로 수정입찰이 진행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DS컨소시엄은 KDBI와 중흥건설의 사전협상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2차 입찰가는 주당 9500원, 총 2조원으로 수정입찰했다. 결국 중흥건설이 직전 제안 가격보다 2000억원이 낮은 가격에 대우건설을 품에 안았다.
이때 KDBI는 2조 1000억원 중 1조 9000억원을 산업은행에 배당했는데 당초 2011년 대우건설 매입에 3조 2000억원을 투입했던 점을 감안하면 산은은 1조 3000억원의 손실을 본 것이다. 하지만 1조 4000억원에 대우건설 지분을 매수한 KDBI는 7000억원의 매각 차익을 봤다며 750억원의 성공보수를 지급받았고 임직원 11명이 44억 9500만원을 성과급으로 나눠가졌다.
감사원은 산업은행 회장에 앞으로 설립목적을 달성할 법적·제도적 요건이 충족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자회사를 신설하여 설립목적대로 운영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고(주의) KDBI를 설립목적대로 운영하는 방안을 마련하되,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자회사 등과 통합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도록 조치했다. 또 KDBI가 구조조정 매각업무를 충실히 하도록 하는 등 관리·감독 강화 방안을 마련토록 통보했다.
또 이번 감사에서 산업은행이 대출브로커와 결탁해 대출 심사를 조작, 코로나19 특별자금을 부당지원해 부실기업에 112억원 대출하고 103억원의 손실을 초래한 사안도 드러났다. 전 청주지점장은 대출 심사를 하면서 추정 매출액을 부풀리고 기존 대출액을 제외하는 식으로 대출을 해줬고, 또 관계회사로 부당대출도 확대해줬다. 이 관계사는 신용등급 CCC에 불과한데다 코로나19 자금의 지원대상이 아니었던 인건비 체불이나 신용카드 연체 등에도 20억원의 특별운영자금을 대출받은 정황이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이 지점장은 2016~2020년까지 자신이 발굴하거나 신규거래한 7개 여신거래업체 대표이사나 인사담당자의 연락처를 자녀들에게 전달, 자녀들이 7개 업체에서 입사와 퇴사를 반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7개 업체 중 3개 업체는 결국 부실화되며 산업은행에 89억원의 손실을 안겼다. 이에 감사원은 이 전 지점장을 면직처분하고 산업은행에도 감사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기관 주의를 줬다.
이 외에도 매각 요건이 충족되지 않은 비상장주식을 부서 실적 목표 달성을 위해 서둘러 헐값에 매각하고 공정가치 평가 과정에 개입하는 등 벤처기업 투자자산 매각이 불투명하게 진행된 정황도 감사에서 드러났다. 또 개발제한구역을 해제·개발하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에 공공출자자로 참여하면서, 법령상 공공출자자에 귀속된 개발이익 배당권리를 포기하고 특정 민간업체에 이전하는 계약을 체결했던 점도 감사에서 밝혀졌다.
감사원은 “정책금융기관의 신뢰 회복을 위해 자회사 설립·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대출심사 및 투자자산 매각 관련 내부통제를 강화하며 개발제한구역 공공출자 PF업무를 철저히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며 위법·부당한 업무처리를 주도한 책임자에 대해 문책 요구(수사요청)하고 인사자료를 통보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