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동 화재, 맨발로 대피시킨 23세 청년 “父 유언 때문에…”
by강소영 기자
2024.01.22 19:56:10
[이데일리 강소영 기자]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나 주민 약 100명이 대피한 가운데 대형 참사로 번질 뻔했던 당시 23세 청년이 1층부터 13층까지 각 세대 문을 두드리며 화재 상황을 알려 대피토록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22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지난 18일 오전 6시 30분쯤 방화동의 한 아파트 14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전체 150가구 중 100가구가 넘는 아파트에는 고령자와 장애인 등 거동이 힘든 이들도 있었다.
A씨는 오전 6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던 중 타는 냄새를 맡았고 불이 난 현장을 발견했다. “소방이 도착하면 그땐 너무 늦을 것 같았다”는 그는 동트기도 전 어두컴컴한 아파트의 1층부터 13층까지 계단을 두 차례 오르내리며 호수마다 문을 두드려 “빨리 대피하세요!”라고 소리쳤다.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놀란 주민들은 옷도 챙겨 입지 못하고 비상계단을 통해 아파트 밖으로 대피했다.
A씨는 주민들을 대피시킨 후에야 아파트 밖으로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A씨의 양손은 시커먼 재로 뒤덮였고 입에선 검은 가래가 나왔다. 자신의 슬리퍼 한 짝이 벗겨진 채 맨발로 뛰어다닌 사실도 까맣게 몰랐다.
A씨의 도움으로 대피한 60대 주민 B씨는 “젊은 총각이 ‘불났어요, 빨리 나오세요’라고 해서 위험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며 “정말 고마웠다”고 전했다.
A씨는 동아일보에 “연기가 자욱한 걸 보고 10분 정도 망설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유언이 떠올라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A씨의 아버지는 간경변증으로 3년 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버지는 생전 “주변 사람들이 어려우면 한 몸 바쳐서 도와주라”고 했다고 A씨는 말했다.
한편 소방 당국에 따르면 해당 불은 인력 108명과 장비 30대를 동원해 오전 7시 49분쯤 완전히 진화됐다.
발화 지점은 14층으로 해당 세대에 거주하는 주민이 핀 담뱃불에 의해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14층 주민은 “담뱃불을 붙이다가 불이 살충제에 옮겨져 붙었다”고 진술했다.
이 화재로 옆집에 거주하는 70대 여성이 대피 도중 연기를 흡입해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됐으나 현재는 의식이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준공된 지 30년이 넘은 해당 아파트는 1층부터 15층까지 모든 층의 방화문이 열려 있어 연기 확산을 막을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준공 당시 소방법상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대상이 아니었기에 내부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곳이 한 곳도 없었던 점 등이 피해를 키운 주요한 요인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