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평사 英 감세안에 경고… 트러스, '성장' 강조하며 돌파 시도

by장영은 기자
2022.10.06 16:16:25

S&P 이어 피치도 英 신용등급 전망 '부정적'으로 하향
감세안 발표에 재정부담 우려↑…실물경기 침체 조짐도
트러스, 전당대회서 '성장' 29번 말하며 정면돌파 시도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국제 신용평가사(신평사)들이 영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하고 있다. 지난달 취임한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야심차게 내놓은 대규모 감세안이 정부 재정 부담을 늘리고 인플레이션을 심화시킬 것이란 전망에서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는 5일(현지시간)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감세안을 옹호하며 영국 경제의 성장을 이끌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사진= AFP)


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피치는 이날 영국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기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영국의 국가 신용등급은 ‘AA-’로 유지됐지만, 신용등급 전망이 낮춰짐에 따라 향후 국가 신용등급도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앞서 지난달 30일에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영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하면서, 영국의 국가 신용등급은 ‘AA’로 유지했다. 또 무디스는 영국 정부에 채무 건전성 훼손 위험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세계 3대 신평사가 모두 영국 정부의 재정 건전성에 우려를 제기한 것이다.

이번 등급 전망 조정은 지난달 23일 트러스 내각이 발표한 대규모 감세 정책에 따른 조치다. 영국 정부는 가계와 기업의 에너지 요금에 대한 일시적인 보조금과 함께 450억파운드(약 72조5000억원) 규모의 감세 계획안을 발표했다. 내년 4월부터 소득세 기본세율을 20%에서 19%로 낮추고 소득이 15만파운드(약 2억4000만원)이상인 고소득자에게 적용하는 최고세율을 45%에서 40%로 낮추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감세 정책 발표 이후 영국 국가채무 증가와 인플레이션 심화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감세안 발표 다음날인 25일 파운드화 가치는 1달러당 1.03달러대로 곤두박질치며 사상 최저치를 기록해 전 세계 금융시장에도 충격파가 미쳤다.



지난달 23일 대규모 감세안 발표 이후 파운드화는 1.03달러대까지 추락했다 반등했다. (사진= AFP)


안팎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트러스 총리는 지난 3일 기존 감세안 중 고소득자의 소득세율을 낮추는 안을 철회했다. 피치는 “이같은 조치는 (영국 국채 전망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를 바꾸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부유층 소득세율 하향으로 줄어두는 세수는 20억파운드(약 3조2000억원)로 추산된다.

S&P는 영국의 공공부문 부채가 2023년부터 국내총생산(GDP)대비 감소할 것이라는 기존 전망을 뒤집고, 부채 규모가 상승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했다. 이어 “영국이 다가오는 분기(4분기)에 기술적 경기침체를 겪게 될 수 있고, 2023년에는 GDP가 0.5%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술적 경기침체는 국가 성장률이 2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영국에서는 문을 닫은 사업체 수가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하는 등 실물경기가 후퇴하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영국통계청(ONS)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영국 내 사업체 폐업 건수는 25만건으로 전년동기대비 16% 증가했다. 이는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인 2019년 상반기에 비해 40% 늘어난 것으로 반기 기준 영국 통계 사상 최대치다.

트러스 총리는 여전히 감세안을 옹호하면서 정면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트러스 총리는 이날 오전 버밍엄에서 개최된 보수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감세는 도덕적, 경제적으로 옳다”며 “최우선은 성장, 성장, 성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연설 중 성장은 29차례나 나왔다.

그는 감세안이 소비와 투자 활성화를 촉진해 영국 경제 성장을 이끌 것이라는 주장을 반복하면서 노동당, 자유민주당 등 야당과 강성 노조를 ‘반성장연합’으로 규정했다. 이어 앞으로도 혼란은 계속 발생하겠지만 폭풍 같은 시기를 지나 영국 경제가 변화하도록 잘 이끌어 가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