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총재와 '매' 금통위원의 공존…"안갯길에서 멈추긴 했는데…"
by최정희 기자
2023.02.23 17:11:52
기준금리 3.5% 동결, '인상 종결' 아니다
총재 "금리, 물가 대비 많이 올려"
조윤제, 임명 후 첫 '인상' 소수의견
금통위원 6명 중 5명 "3.75%까지 열어두자"
환율 급등시 '원화 절하 용인'도 선택지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출처: 한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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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자동차를 운전하는데 안개가 가득해요. 어느 방향인지 몰라요. 그럴 때 어떻게 하겠냐. 차를 세우고 안개가 사라질 때까지 본 다음에 갈지 말지 봐야 하지 않겠냐.”
23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1년 만에 3.5%로 유지한 배경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금리 동결 결정을 안개 낀 길을 가는 자동차에 비유했다. 그러니 기준금리 동결을 함부로 ‘앞으로는 금리 인상 없다’라고 해석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총재를 제외한 6명의 금통위원 중 5명이 ‘최종금리 3.75% 가능성’을 제시했다. 금리를 동결하더라도 ‘물가 안정’을 위해선 언제든 칼을 꺼낼 것이란 의지를 드러낸 것이지만 실제로 인상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총재는 현 기준금리 수준이 충분히 긴축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한은 금통위는 이날 이창용 총재 체제에서 처음으로 금리를 동결했다. 작년까지 ‘물가 안정’으로 직전하던 금통위가 올해부턴 ‘성장, 금융시장 안정’까지 고려한 정교한 통화정책을 펴겠다고 했으니 그 고심의 끝은 ‘동결’로 결정됐다.
동결 결정의 속내는 간단하지 않다.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이 총재는 “2월에는 물가가 5% 내외로 상승하다가 3월부터는 4%대로 낮아지고 그 추세가 계속돼 올해말에는 3% 초반으로 내려가는 경로를 생각하고 있다”며 “생각대로 가게 되면 금리를 더 올리기보다 지금 수준에서 물가가 경로대로 가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금리를 (2021년 8월부터 1년 반 동안) 3%포인트 올렸는데 물가 상승 대비 금리 상승폭이 주요 선진국 대비 평균 이상”이라며 “시장 전체적으로 금리가 다 올라서 긴축적으로 가는 상황은 피부로 많이 느끼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이날 한은이 전망한 올해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은 각각 석 달 전보다 0.1%포인트 하향 조정한 1.6%, 3.5%였다. 세계 경제성장률, 세계 교역 신장률이 각각 2.4%, 2.5%로 0.2%포인트 상향 조정됨에도 반도체 업황 반등 시점이 2분기에서 3분기로 지연되고 국내 부동산 경기 둔화가 나타난 점이 성장률을 하향 조정한 배경이다. 금리 인상에 따른 대내적 요인이 경기를 갉아먹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은에 따르면 기준금리를 25bp 올리면 1년내 성장률은 0.1%p 낮아진다. 2021년 8월부터 지난 달까지 금리를 3%포인트 올렸으니 성장률 하락 효과는 1.2%포인트에 달한다.
반면 물가상승률은 하향 조정됐지만 식료품·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와 농산물·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각각 3.0%, 3.9%로 0.1%포인트, 0.3%포인트 상향조정됐다. 공공요금이 여타 상품·서비스 가격을 자극하는 등 수요측 물가 상승 압력은 천천히 떨어질 것이란 평가다.
물가상승에 대한 불확실성 등으로 매파 금통위원들은 더 늘어났다. 이 총재는 “물가 경로에 대한 견해 차이가 크다”며 “6명의 금통위원 중 1명만 최종금리 3.5%가 적정하다고 본 반면 나머지 5명은 3.75%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3.75% 전망 위원이 1월 3명에서 5명으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총재는 “금리 결정을 금리 인상 기조가 끝났다고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조윤제 위원이 금통위원 임명 이후 처음으로 ‘인상’ 소수의견을 낸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조 위원은 금통위는 협의체이기 때문에 소수의견을 내는 것을 최대한 자제해왔으나 1월 금리 인상 결정 이후 시장금리가 하락하자 물가안정 의지를 더 드러낼 필요가 있다는 측면에서 ‘인상’에 표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총재는 한미 금리 역전폭이 2%포인트로 벌어질 것이 유력한 상황에서 환율이 두 달 만에 1300원을 돌파했지만 금리 인상이 아닌 원화 절하 용인도 선택지의 하나라고 밝혔다. 그는“한미 금리 역전폭이 커지면 환율을 어느 정도 용인할지, 외환보유액으로 쏠림을 막을지 또는 금리로 대응할지 등 모든 선택지를 놓고 정교하게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임무”라며 무작정 미국을 따라가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비둘기’ 총재와 ‘매파’ 금통위원의 공조는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줄이는 모습이다. 2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는 ‘긴축 기조를 상당기간 유지하겠다’는 표현이 새로 삽입됐다. 총재는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인 2%까지 내려갈 것이라는 확신이 들면 그때 금리를 인하하겠다”며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차단했다.
관건은 한은 예상대로 물가가 움직이냐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위원은 “총재가 ‘물가 패쓰(path)’라는 단어를 10번 이상 언급했다. 핵심은 한은이 예측한 물가 경로를 지킬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위원은 “2월 금통위는 1월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완화적이었던 메시지를 보완하고 연준 긴축 부담과 외환시장 불확실성을 감안한 잘 포장된 이벤트였다”며 “물가 전망 경로의 유의미한 이탈과 환율 급등이 없다면 연말까지 동결을 전망한다”고 밝혔다.
금리 인하 가능성을 애써 차단했음에도 금리 인하 기대가 완전하게 사라진 것은 아니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은의 물가 경로대로 갈 경우 하반기에는 기준금리가 물가상승률보다 더 높아지는 ‘실질 금리 플러스’ 상태가 되는데 경기둔화가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이를 장기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진욱 씨티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총재는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고 금리 결정시 대외 요인보다 국내 요인을 더 우선할 것이라고 했다”며 8월 금리 인하 전망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