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號 출범후…중미 젊은이들 '아메리칸 드림' 다시 꿈꾼다

by방성훈 기자
2021.03.10 15:46:39

올 들어 美입국 기회 엿보는 중미 이민자 급증
멕시코 및 과테말라 국경 이민자 수용시설 포화
10대 청소년 다수…"美입국 쉬워질 것" 한목소리
美, 불법 이민 급증 우려…점진적 완화 강조·홍보

‘바이든, 제발 우리를 들여보내달라(Biden, please let us in)’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이민자들이 지난 2일(현지시간) 멕시코 바하 캘리포니아주에서 무릎을 꿇고 미 입국 허용을 간청하고 있다. (사진=AFP)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지난달 말, 온두라스 출신 15세 고아 소년 엘더 크루즈는 과테말라와 접해 있는 멕시코 국경 지역에 구금돼 있다가 온두라스로 추방됐다. 미국을 향하던 중 멕시코 이민당국에 붙잡혔던 크루즈는 “다음달 다시 한 번 미국 입국을 시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새로운 미국 대통령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더이상 없기 때문”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친구들이 새 대통령 덕분에 미국에 입국하는 게 더 쉬울 것이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미 행정부 시절 반(反)이민정책으로 쫓겨나거나 입국을 거부당한 중미 국가 젊은이들이 조 바이든 신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으로 이주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대통령이 바뀌면서 다시 한 번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신문은 “불법 이민의 원천인 멕시코를 비롯한 중미 지역 국가들에서 많은 이민자들이 미국 안에서든 밖에서든 미 정부의 정책을 따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동의하는 한 가지는 트럼프 전 행정부 때보다 바이든 행정부 하에서 미국에 입국하는게 훨씬 더 쉬울 것이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지난 1월 5707명의 미성년자가 미 입국을 시도했다. 이는 트럼프 전 행정부 마지막달인 작년 12월 4855명에 비해 늘어난 수치다. 2월엔 가파른 급증세가 예상된다.

과테말라 국경 근처의 한 멕시코 이민자 시설은 지난 1월과 2월 약 6000명의 사람들을 수용했다. 이는 2020년 한 해 동안의 5000명을 웃도는 규모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이주가 사실상 중단됐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과도한 급증세다. 이 수용시설에 거주하며 멕시코에서 일을 해 돈을 벌고 있는 10대 청소년들은 하나같이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처럼 나쁜 마음이 없는 착한 사람 같다. 더 친근해 보이고 좋은 사람처럼 보인다”며 “이제 미국에 입국하는 게 더 쉬워질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문제는 최근 들어 불법 입국을 시도하고 있는 대다수가 10대 청소년들이라는 점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은 미성년자를 고국으로 돌려보내는 트럼프 전 행정부 시절의 이민정책을 중단했다. 대신 코로나19 검사를 실시한 뒤 추방할 때까지 미 정부 보호시설에 머무르도록 하고 있다. 미성년자가 미국 내 체류할 수 있는지, 추방돼야 하는지 결정이 이뤄지기 전까지 미국 내 성인 후원자 또는 가족에게 인계된다.



이는 트럼프 전 행정부 시절의 이민정책을 완전히 뒤집지 않고 재정비하는 수준에서 완화하려는 시도라고 WSJ은 평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또 성인 망명 신청자들에 대해서도 이전 정부의 정책을 완화하고 있다. 트럼프 전 행정부 시절엔 미 이민법원 심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멕시코에서 강제 대기토록 했고, 대부분의 망명 신청도 거절됐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멕시코에서 수년간 기다렸던 일부 신청자들의 망명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사진=AFP)
다만 바이든 행정부는 미디어 등을 통해 이민정책 변화가 급격히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기존 정책을 대폭 완화하거나 철회할 경우 불법 입국자들이 물밀듯 몰려올 가능성이 있는데다, 미국 내 청소년 보호시설이 포화상태가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과테말라 주재 미 대사관은 지난 6일 트위터에 영상을 게재하고 멕시코를 거쳐 미국에 불법 이민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에게 경고했다. 영상에는 불법 이민을 위해 북쪽(멕시코)을 향했던 여정을 후회한다고 토로하는 이주민들의 고백이 담겼다.

하지만 멕시코 남부 이민자 보호소의 가브리엘 로메로 소장이 영상에서 “망명 신청자들을 환영하지만 아직은 아니다”라고 다소 모호하게 발언한 것이 오히려 이민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에겐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미국 국토안보부(DHS) 장관은 “우리는 (미국에) 오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지금’ 오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야 가능한 빨리 그들(이민자)에게 안전하고 질서 있는 보호 절차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WSJ은 “트럼프 전 행정부 시절보다 인도적인 방향으로 이민정책이 바뀌고는 있지만 미 공화당은 잠재적 위험을 키우는 정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