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합의 이행돼야 곡물협정 복귀"…서방에 제재완화 압박
by박종화 기자
2023.09.04 23:32:13
푸틴, 에르도안 설득에도 ''제재 완화 우선'' 고수
러, 튀르키예 통해 자국 곡물 우회 수출에 주력
푸틴-에르도안, 천연가스·원전 등 경제협력도 논의
[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설득에도 불구하고 제재 해제 없이는 흑해곡물협정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탈퇴로 촉발된 국제 곡물 시장 불안이 장기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러시아 소치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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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소치에서 에르도안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서방이 곡물협정에서 러시아에 약속한 의무를 계속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러시아는 (서방이 약속한) 모든 합의가 이행되면 흑해곡물협정에 복귀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러시아산 곡물과 비료 수출을 가로막는 제재를 풀어야 흑해곡물협정에 복귀할 수 있다는 뜻이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이 곡물 수출을 위한 해상 회랑을 군사용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회랑을 군사용으로 사용해선 안 된다”고도 말했다.
흑해곡물협정은 흑해 항구 3곳을 통해 러시아·우크라이나산 식량과 비료 등을 수출할 수 있도록 한 협정이다. 이 협정에 따라 3300만t 가까운 우크라이나산 곡물이 흑해로 수출, 식량 가격 안정에 기여했지만 지난 7월 러시아는 일방적으로 협정 파기를 선언했다. 서방 제재로 인해 자국 농산물과 비료는 수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러시아가 흑해곡물협정을 탈퇴하고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을 막으면서 7월 초만 해도 부셸당 6.3달러였던 밀 선물 가격은 7월 말 7.7달러로 20% 넘게 올랐다.
흑해곡물협정 종료로 식량 시장이 불안해지자 국제 사회도 물밑에서 러시아 설득에 나섰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 앞서 “곡물 회랑은 현재 튀르키예-러시아 관계에서 모두가 주목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단계”라며 “특히 아프리카 저개발 국가에게 이번 (정상회담) 기자회견 메시지가 매우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엔과 협의를 거쳐 러시아의 불만을 누그러뜨릴 당근을 갖고 푸틴 대통령을 찾았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향해서도 “흑해곡물협정에 관해선 러시아에 대한 태도를 누그러뜨려야 한다”며 제재 문제에서 양보할 것을 종용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또한 지난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에게 흑해곡물협정 복귀를 설득하는 서한을 보냈으나 러시아는 퇴짜를 놨다. 유엔은 러시아 국영 농업은행(로셀호즈뱅크)의 유럽 자회사를 달러 결제를 위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네트워크에 복귀시키고 러시아 비료회사에 대한 제재를 일부 해제할 것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설득이 실패하면서 국제 곡물 시장 불안은 장기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파기로 국제 곡물 가격이 전보다 10~15%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는 우회로를 통한 식량 수출을 시도하고 있지만 흑해 항로를 이용했을 때보다 운송비가 비쌀 뿐더러 러시아는 이 우회로마저 공격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날도 드론을 동원해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항인 이즈마일을 공격했다.
러시아는 흑해곡물수출 복원 대신 튀르키예를 통한 우회수출을 제안하고 있다. 카타르의 금융 보증 하에 러시아가 싼값에 자국산 곡물을 튀르키예에 제공하면, 튀르키예 현지에서 이를 가공해 다른 나라에 재수출하는 방식이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튀르키예는 아프리카에 무료로 식량을 공급하자는 데 의견을 좁혔으며 2~3주 안에 공급이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한편 두 정상은 이날 회담에서 경제협력 강화도 논의했다. 두 사람은 튀르키예에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출 허브를 건설하기 위한 실무진 협의를 시작하는 한편 튀르키예 시노프 원전 건설에서도 협력을 이어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