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정의선의 CES 광폭 행보…‘현대차 구하기’ 드라이브
by노재웅 기자
2018.01.10 16:24:46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4년 연속 CES 참석
사상 최초 현대·기아차 동시 출격 ‘승부수’
분단위로 행사 참관…파트너 업체 손수 챙겨
“중국 위기는 좋은 주사…100만대 회복 기대”
[라스베이거스(미국)=이데일리 노재웅 기자] 정의선 현대차(005380) 부회장이 올해도 어김없이 라스베이거스를 찾으며 지난 2015년 이후 4년 연속 ‘CES 개근’ 기록을 세웠다. 정 부회장은 ‘위기의 현대차’를 직접 구원하기 위해 과거 어느 때보다 바쁘게 분 단위로 움직이면서 때로는 직접 단상 위에 오르기도, 또 때로는 미래차 파트너십 업체의 행사를 손수 챙기는 등 광폭 행보를 보였다.
CES 현장에서 직접 작년 한 해 동안 홍역을 앓았던 중국과 미국 ‘2대 시장’에서의 판매 회복에 대한 자신감도 드러냈다. 이를 위해선 “미래를 먼저 대비하느냐가 사느냐, 죽느냐를 결정한다”고 강조했다.
정의선 부회장은 CES 전시장에서 전 세계 자동차 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유수의 글로벌 기업 CEO들과 연쇄적으로 만나는 등 미래 경쟁력 강화 구상에 몰두했다. 매년 CES 현장을 찾아 글로벌 업체들의 기술을 직접 체험하고 미래 트렌드를 파악해온 정 부회장은 올해도 바쁜 일정을 소화하며 ‘열공모드’에 돌입했다.
| 정의선 부회장이 한 자동차 전장 전문업체를 둘러보고 있는 모습. 현대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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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LG전자, 파나소닉 등 글로벌 전자 업계는 물론 자동차, 부품 업체들의 전시관을 돌며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최신 기술 동향을 눈여겨보고, 임직원들과 의견을 교환했다.
특히 올해는 최근 모빌리티 혁신을 주도하며 전세계 자동차 회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핫(Hot)’한 기업의 CEO들과 연이어 회동하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정의선 부회장이 만난 인텔·모빌아이, 엔비디아, 오로라 등의 CEO들은 미래 산업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물들로, 정의선 부회장은 이들과 미래 모빌리티는 물론 미래 산업 지형 변화와 관련된 폭 넓은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CES 전시장 개막 첫날인 9일(이하 현지시간)에 정의선 부회장은 자율주행 인지 분야 세계 최고 기술력을 보유한 모빌아이 전시장을 방문, 인텔 브라이언 크르재니치 CEO와 인텔의 수석 부사장이자 모빌아이 CEO겸 CTO인 암논 샤슈아를 함께 만났다. 정 부회장은 이번 만남에서 자율주행 기술 공동 개발을 위한 협력 확대 방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모빌아이 암논 샤슈아 CEO와는 지난해 5월(이스라엘)과 10월(한국)에 이은 세 번째 만남을 가질 정도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모빌아이는 전세계 자율주행 자동차에 적용되는 카메라, 센서의 80~90%를 납품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지난해 3월 인텔이 17조원에 인수하면서 화제를 낳고 있는 회사다.
| 정의선 부회장이 모빌아이·인텔 부스를 방문해 전시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현대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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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보다 이틀 앞선 7일에는 올해 CES의 첫 공식 일정으로 ‘자율주행차 개발 파트너’인 엔비디아(NVIDIA)의 미디어 컨퍼런스를 참석했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날 행사에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아울러 한 CES 전시 기간 중 정 부회장은 엔비디아 젠슨 황 CEO와의 만남이 있을 것으로 알려졌는데, 젠슨 황 CEO와는 작년 CES에서도 별도로 만남을 가진 바 있다.
엔비디아의 자율주행 협업 얼라이언스는 인텔·모빌아이 얼라이언스와 함께 글로벌 자율주행차 공동개발의 주요 축을 구성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다음날인 8일 바로 현대차 미디어 컨퍼런스에서 차세대 수소전기차 ‘넥쏘’를 공개하면서, 넥쏘를 활용해 미국 자율주행 전문기업 오로라와의 공동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전날 엔비디아도 오로라 이노베이션과의 협업을 발표하면서, 글로벌 자율주행 합종연횡의 본격화를 알린 셈이다. 오로라는 폭스바겐과도 자율주행 협력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어, ‘현대차-폭스바겐-엔비디아-오로라’로 이어지는 견고한 자율주행 연합군이 탄생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이다.
정 부회장은 CES 기간 중 정의선 부회장과 크리스 엄슨 CEO 등 현대차와 오로라 양사의 주요 경영진이 회동을 갖고 향후 구체적인 협력 방안에 대한 논의가 있을 예정이다. 양사는 2021년까지 스마트시티 내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상용화할 계획이다.
정 부회장은 이러한 협업 움직임에 대해 “내부적으로 계속 파트너들을 만나고 있고 준비를 하고 있다”며 “자율주행도 오로라하고의 협업이 이번 CES에서 발표가 됐지만 사실 오랜 기간 계속 만나며 협업해온 결과다.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것은 좀 아닌 것 같고 제대로 하고 실속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CES는 사상 최초로 현대차와 기아차(000270)가 동시에 출격해 부스를 차린 첫 행사기도 하다. 그만큼 정 부회장이 CES에 ‘올인’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CES 현장에서 만난 정 부회장은 모터쇼보다 CES를 즐겨 찾는 데 대해 “재미있기 때문”이라며 가볍게 답했지만, 정 부회장이 단순한 호기심만으로 정신없이 분 단위로 CES 일정을 소화하는 것은 아닐 터. 그는 수십여개의 주요 자율주행 파트너 및 경쟁사의 부스를 둘러보면서, 관련 업체 최고경영자(CEO)와 전문가도 잇따라 만나는 등 끊임없이 협력 방안과 미래 대응책을 모색했다.
현대차의 기업 문화를 송두리째 바꾸는 것도 정 부회장의 핵심 고민 중 하나다.
그는 “미래를 먼저 대비하느냐가 사느냐, 죽느냐를 결정한다”며 “IT 기업보다 더 IT스러운 기업이 돼야 하고 의사결정 속도, 방법 등에서 고쳐야 할 과제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또 “유럽, 미국처럼 연구원들이 자유롭게 도전하고 성과가 안 나와도 용인되는 문화가 정착되면 더 나은 기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중국 내 사드 보복에 따른 극심한 판매 부진을 두고서는 ‘좋은 주사를 맞았다’고 표현했다. 아울러 이번 사태를 교훈삼아 상품성을 더욱 개선하고 빠르게 정상화를 추진해 연내 사드 사태 이전 수준의 판매량을 달성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정 부회장은 CES 현장에서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작년 한 해 동안 지속해서 제기된 중국시장 위기론에 대해 “실제로 작년엔 굉장히 심각했다”면서 “오히려 좋은 주사를 맞았다고 생각한다. 상품과 디자인, 조직 측면에서 깨달은 점이 많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특히 디자인 조직을 중국으로 옮기면서 현지상품 개발까지 기회를 만들고 있다”며 “내년부터는 기회가 올 것이다. 더 경쟁력을 가지게 된 것. 그런 기회가 다시는 안 올 것으로 본다”고 자신했다.
중국시장 내 판매량 회복 전망에 대해선 “작년 11월부터 정상화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전전년도 수준인) 90만대, 잘만하면 100만대까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정의선 부회장이 한 가전업체를 방문해 전시물을 체험하고 있는 모습. 현대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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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시장에 대해서도 판매 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정 부회장은 “이번에 법인세를 내린 것이 좋은 영향이 있을 것”이라며 “작년에 경쟁력 있는 매력적인 상품이 없었는데 엘란트라 후속이 페이스리프트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나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재고 물량이 정상레벨 이하로 내려와야 버틸 수 있다”며 “품질 면에서 아직 갈 길이 멀다. 미국에서 가격이 많이 오르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돌파해야 하는 과제다. 후퇴하면 미래가 안 보인다. 경쟁사가 할인 유도를 해도 말려들면 안되며 서비스 등 다른 방면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 부회장은 CES를 마치고 국내로 돌아가선 노사 임단협 타결을 제일 먼저 챙길 예정이다. 해외 조직 권역별 사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그 부분이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달 출시가 예정된 벨로스터 등 신차 나오는 것을 준비하고, 인사 이후 새롭게 꾸려진 조직 면에서도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직접 챙길 의중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