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먹거리 잡아라"..M&A로 새 판 짜는 제약산업

by송이라 기자
2015.02.26 15:51:13

올들어 이뤄진 M&A 대금만 61兆
특허 만료·싼 금융비용으로 거래 활발

1988~2014년 미국 제약업계 M&A 건수와 거래금액(단위: 건, 10억달러) 추이 (그래프=링크드인)
2014년은 추정치


[이데일리 송이라 기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글로벌 제약업계 인수·합병 시장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내로라하는 대형 제약회사들은 미래 헬스케어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 신약 개발보다는 기술력을 갖춘 제약사를 통째로 인수하는 방법을 택했다. 암 치료제 등 신기술을 가진 제약사들은 작년 순익의 수백배에 달하는 몸값에 거래되고 있다.

올해가 시작된지 두 달도 채 안 지났지만 조(兆) 단위가 넘는 대형 제약업계 M&A 소식만 벌써 네 번째다.

25일(현지시간) 암 치료제 개발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실리콘밸리 대표 바이오테크업체 파마사이클릭스(Pharmacyclics)가 매각을 추진 중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예상 몸값은 190억달러(약 20조8800억원)로 지난해 이 회사 순익의 200배가 넘는다. 현재 다국적 기업인 존슨앤존슨(J&J)과 노바티스 등이 인수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만약 예상대로 매각이 된다면 올해 제약산업 최대 규모 M&A다.

일주일 전에는 캐나다 최대 제약사 밸리언트가 미국 위장질환 전문 제약업체 실릭스를 145억달러에 인수했다. 지난해 보톡스 제조사인 앨러간을 적대적 인수하려다 실패한 밸리언트는 실릭스와의 M&A를 성사시켰다. 밸리언트는 눈관리 전문업체 바슈롬을 포함해 최근 5년간 192억달러을 M&A에 쏟아부었다.

세계 2위 제약업체 미국 화이자는 170억달러에 바이오시밀러(복제약품) 제조업체 호스피라를 사들였고, 영국 다국적 제약사 샤이어는 희귀병 치료제 개발에 특화한 미국 생명공학업체 NPS파마큐티컬스를 52억달러에 인수했다. 올 들어서만 총 557억달러가 매각 대금으로 사용된 것이다.



플레밍 온스코프 샤이어 최고경영자(CEO)는 “사업 범위 확대, 효율성, 혁신 필요성이 M&A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며 “인구 고령화에 따라 증가하는 헬스케어 수요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제약업계 뿐 아니라 전 분야에서 M&A가 봇물을 이뤘다. 시장규모가 전년대비 47%나 급증한 건 초저금리가 지속된데다 기업들의 자신감이 회복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M&A 규모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였다.

특히 제약업계는 지난해 절세를 목적으로 하는 인수 시도가 줄을 이었다. 미국 내 높은 법인세를 피하기 위해 유럽계 제약사를 인수해 이 지역으로 본사를 옮겨려는 의도였다. 미국 제약사 애브비와 화이자는 각각 샤이어와 애스트라제네카를 인수해 법인세를 피하려 했지만 무산됐다. 미국 규제당국이 이같은 행위를 막기 위해 각종 규제장치를 마련한 탓이다.

이외에도 신약을 보유한 업체를 인수해 사업 범위를 확대하고 판권을 확보하기 위한 제약업계간 새 판 짜기가 이뤄졌다. 특히 상당수의 글로벌 제약기업들이 주요 제품의 특허 만료로 매출 감소에 직면하면서 덩치 키우기로 위기를 타개하려는 모습이다. 국제 컨설팅업체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오는 2019년까지 글로벌 제약기업들은 650만달러 상당의 매출 감소에 직면하게 될 예정이다. 실제 영국 제약사 애스트라제네카는 특허 만료로 인해 2010년 9%에 달했던 시장 점유율이 2013년에는 3%로 급감했다.

여기에 저금리가 계속되면서 싼 값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점도 기업간 M&A를 부추기고 있다.

FT는 제약 산업은 미래 성장을 위한 새로운 자원을 발굴하기 위해 압력을 받고 있으며 은행원들은 제약업계가 저렴한 금융비용을 이용해 앞으로 더 많은 M&A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