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의 공포' 두려운 트럼프…감세 추진 공식화
by방성훈 기자
2019.08.21 17:45:34
트럼프, “급여세 인하 검토” 시인…백악관 부인 하루만
경기침체 때문 아니라지만…경기부양 노린 듯
재정여력 부족 최대 ‘걸림돌’…연일 금리인하 압박 이유
對中관세 거둬 재정 확보?…이미 농민 지원으로
[이데일리 이준기 뉴욕특파원·방성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급여세·자본소득세 등에 대한 다양한 감세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내년 11월 재선의 최대 걸림돌로 부상한 이른바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를 막기 위한 조치는 아니라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지만, 사실상 본격적인 경기부양책 검토에 나선 것이어서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클라우스 요하니스 루마니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많은 사람이 급여세 인하를 보고 싶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근로자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감세 조치를 하든 하지 않든 경기침체 때문은 아니다. 침체라는 단어는 지금 어울리지 않으며, 현 상황과 거리가 멀다”고 선을 그었다.
‘한시적 급여세 인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워싱턴포스트 보도가 사실임을 확인시켜준 셈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전날 백악관이 경기침체를 막고자 급여세 인하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으나, 백악관은 즉각 성명을 통해 “현 시점에서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 등 미국 매체들은 이날 백악관이 경기침체에 대비한 비상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급여세 인하 관련 백서를 제작한다는 관련 보도를 잇따라 내놨다. 뉴욕타임스는 백악관 관리들이 주로 부유층 투자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자본소득세 인하 계획도 논의 중이라고 썼다.
한시적 급여세 인하를 검토하게 된 배경에는 경기 호조세를 유지해 내년 11월 재선에서 승리하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다. 특히 미국 경제가 소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영향을 끼쳤다. 급여에서 의무적으로 징수되는 세금을 줄여 소비 여력을 높여주겠다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올해 1분기 3.1%에서 2분기 2.1%로 둔화됐다. 속을 들여다보면 사실상 소비가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 경제 활동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개인소비지출이 1분기 1.1%에서 2분기 4.3%로 크게 상승한 반면, 기업 투자 활동을 나타내는 비거주용 고정 투자는 1분기 4.4% 증가에서 2분기 0.6% 감소세로 뒷걸음질쳤다. 2016년 1분기 이후 첫 감소다.
급여세 인하에 따른 수혜 계층이 부유층이 아닌 중산층이라는 점도 대선에선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민주당 등의 반대 여론을 불식시킬 수 있어서다.
|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 (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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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미국 정부가 감세를 시행할 수 있을 만큼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 12일 미국 재무부는 2019회계연도가 시작된 작년 10월부터 올해 7월까지 10개월간 연방정부 재적적자가 8668억달러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27%나 늘어난 규모다. 아울러 2018회계연도 1년 동안 기록한 7790억달러의 재정적자도 이미 넘어선 것이다.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시행한 1조5000억달러 규모의 감세와 지출이 늘어난 것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재무부는 현재 추세가 지속되면 2019회계연도 재정적자가 1조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재정적자가 확대될수록 장단기 국채 수익률 역전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채 발행을 늘릴 경우 단기적으로 공급초과를 초래할 수 있어서다. 경기침체 우려로 장기 국채 수익률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단기 국채 수익률이 상승하면, 금융시장 불안을 가중시키는 등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준비제도(연준·Fed)에 연일 금리인하를 주문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에 연내 최소 1%포인트의 기준금리 인하는 물론, 연준이 채권을 사들여 시중에 돈을 푸는 이른바 ‘양적완화(QE)’까지 압박하고 있다. 재정여력이 충분치 않은데다 국회라는 산까지 넘어야 하는 만큼 감세보다는 금리인하를 선호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지난 18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감세 2.0’, 우리는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다”며 “릭 스콧(플로리다) 상원의원이 지난주 ‘중국에서 관세를 받아 감세의 형태로 납세자들에게 되돌려주는 게 어떠냐’는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것이 아이디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대중 관세 수입은 사실상 중국과의 무역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농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중국과의 무역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12개월 동안 총 630억달러의 관세가 징수됐다. 이에 따른 세입은 약 300억달러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120억달러)와 올해(160억달러) 두 차례에 걸쳐 농민들에게 지급한 지원금을 감안하면 사실상 관세로 벌어들인 돈을 전부 농민들에게 나눠준 셈이다. 즉, 농민들이 농산물을 수출해 벌어들일 돈을 정부가 관세로 거둬 나눠준 셈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