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 불능 사회…100만 신불자, 3년 지나면 회생 못한다(종합)
by김정남 기자
2017.09.21 15:48:54
[한국은행 금융안정상황 보고서]
한은, 최근 3년6개월 채무불이행자 이력 첫 추적
신용불량 기간 지날수록 신용회복 급격히 낮아져
"채무자들, 3년 지나도록 빚 못 갚으면 자포자기"
| 어느 시민이 한 상호저축은행의 대출창구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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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김정현 기자] 서울에서 치킨집을 하던 40대 자영업자 A씨는 최근 사업을 접었다. 골목길에 위치한 동네 치킨집이었던 탓인지 장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쌓인 건 빚밖에 없었다. 점포 인테리어비에, 재료비에, 인건비에, 결국 사업은 돈이었다.
A씨가 처음부터 빚 갚을 의지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주변에 도와줄 수 있는 이도 없었고 실제로 가진 재산을 탕진했던 탓에 한 번 자포자기를 한 뒤 계속 채무를 갚지 않았다고 한다. A씨는 그렇게 채무불이행자, 즉 신용불량자 낙인이 찍혔다.
A씨에 대한 채무 소송을 진행한 한 변호사는 “빚을 갚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채무불이행자 신분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포기하면 그 상황 그대로 간다”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신용을 회복하는 비중은 현저히 줄어든다”고 말했다.
채무불이행자가 된 이후 3년이 지나면 신용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한국은행의 경고가 나와 주목되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21일 검토한 금융안정상황 보고서를 보면, 지난 2014년 중 새로 채무불이행자가 된 39만7000명 가운데 3년6개월이 지난 올해 6월 말까지 신용을 회복한 차주는 19만4000명으로 파악됐다.
이는 전체의 48.7%다. 한 번 채무불이행자가 된 이후 3년6개월이 지났지만, 신용을 회복한 차주는 절반에도 못 미쳤다는 얘기다.
채무불이행자는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후 갚지 못한 사람을 말한다. 통상 신용불량자로 불렸지만, 2005년부터 채무불이행자로 그 용어가 대체됐다.
한은은 가계차주 정보(나이스평가정보)를 활용해 2014년 이후 채무불이행자의 신용 회복 이력을 추적했다. 보통 채무불이행자는 90일 이상 연체금액이 50만원을 초과하거나 50만원 이하 2건 이상을 연체한 이를 지칭하는데, 한은은 이에 더해 개인워크아웃·개인회생이 진행 중인 차주까지 포함했다. 한은이 이같은 전수조사 분석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결과는 우리나라 채무불이행자의 현주소를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일단 기간이 지날수록 신용을 회복할 가능성은 급격히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3년6개월 기간 중 신용이 회복된 이들 가운데 채무불이행 발생 1년 이내에 회복한 비중은 60.5%였다. 하지만 1~2년은 21.8%, 2~3년은 15.4%으로 각각 낮아졌고, 3년 이상은 2.3%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기간별 신용회복률(신용회복자/채무불이행자)은 발생 1년 이내 29.5%, 1~2년 10.6%, 2~3년 7.5%로 각각 나타났다. 이 역시 3년 이상의 경우 1.1%로 급락했다. 채무불이행자로 등록된 후 3년이 지나면 사실상 회생이 불가능해진다는 관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또다른 채무 소송 관련 변호사는 “채무자들은 3년이 지날 때까지 노력했는 데도 빚을 못 갚으면 포기해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눈에 띄는 건 또 있다.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릴 경우 더 회생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저축은행, 신용카드, 대부업, 할부·리스 등의 대출을 가진 차주의 신용 회복률은 41.9%에 그쳤다.
금융업권별 신용 회복률을 보면, 저축은행과 신용카드는 각각 35.6%, 36.8%에 불과했다. 대부업(37.9%)과 할부·리스(39.8%) 역시 30%대였다. 은행(43.8%)과 상호금융(57.7%) 등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한은 관계자는 “상호금융은 대표적인 관계형 금융”이라면서 “금융기관과 채무자와 관계가 지속되면서 차주에 대한 정보 획득이 용이하고, 대다수가 농·수·산림업 종사자로 채무불이행 발생이 계절적 요인에 따른 경우가 많아 신용 회복률이 유독 높았다”고 분석했다.
위험성이 높다고 여겨지는 대출의 신용 회복률 역시 저조했다. 신용대출자(42.1%)와 담보대출자(77.1%)의 차이부터 두 배에 가까웠다. 아울러 다중채무자의 경우 34.9%로 비(非)다중채무자(63.0%)와 비교해 훨씬 낮았다.
우후죽순 급증하는 자영업자도 위험에 더 노출돼 있다. 자영업자의 신용 회복률은 40.9%에 불과했는데, 임금근로자는 그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높은 50.2%를 기록했다.
올해 6월말 현재 채무불이행자 수는 104만1000명. 2013년 이후 105만명 안팎 수준을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결코 적지 않은 수치다. 이들이 가진 부채 규모는 29조7000억원. 전체 가계부채(1388조3000억원)의 2.1%다.
‘100만 신용불량자’는 일상적인 경제 활동에 만만치 않은 제약을 받는다. 신규 대출 혹은 카드 발급 같은 모든 형태의 신용 거래를 할 수 없을 뿐더라 재산 압류 등도 당할 수 있다. 신용을 회복해도 연체 기록이 장기간 남아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이는 우리 경제를 넘어 사회 전반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가뜩이나 최근 금융당국의 규제 여파에 따른 ‘풍선효과’로 제2금융권 대출이 급증하고 있고, 원치 않는 은퇴에 직면한 베이비부머 세대가 자영업 시장에 쏟아져나오고 있다. 채무불이행자가 추후 급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한편 채무불이행자 중 3.6%는 신용 회복 후 다시 신용 불량의 늪에 빠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이후 해제 이력이 있지만, 올해 6월말 현재 다시 채무불이행 등록이 된 차주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