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도 고개숙인 이재용 부회장 "참담하고 책임 통감"

by이진철 기자
2015.06.23 17:25:57

삼성서울병원 메르스 사태 관련 대국민 사과
첫 공식기자회견 "고인·유족·환자분께 죄송"
"아버님도 누워계셔" 잠시 눈시울 붉히기도
공익재단 이사장 겸 그룹수장, 직접 사태수습 나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와 관련한 입장을 발표하기 전 허리숙여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한대욱 기자
[이데일리 이진철 장종원 오희나 기자] 삼성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처음으로 공식 기자회견장에 나와 사과문을 낭독했다.

삼성은 23일 오전 9시30분께 출입기자들에게 “오전 11시 메르스와 관련해 발표할 내용이 있다”고 공지했다. 공지 직후만 하더라도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확산의 진원지로 지목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삼성그룹 고위 임원들과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 등이 참석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향후 개선책 및 지원 방안 등에 대해 발표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곧바로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와 재발방지책을 발표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기자회견장이 위치한 삼성전자 서초사옥 주변은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기자회견장에는 수백여명의 취재진이 몰리며 시작을 기다렸지만 삼성측은 “기자회견 내용을 지켜보자”라고만 설명할 뿐 이 부회장의 참석여부를 공식 확인해주지 않았다.

오전 11시 정각 회견이 시작되자 마침내 이 부회장이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짙은색 정장에 푸른색 계열의 넥타이를 맨 이 부회장은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

기자회견장에는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장을 맡고 있는 이인용 사장을 비롯해 그룹 미래전략실의 임직원들이 대거 참석해 이 부회장의 모습을 초조하고 긴장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이 부회장은 준비한 발표문 낭독을 통해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감염과 확산을 막지 못해 국민 여러분께 너무 큰 고통과 걱정을 끼쳐 드렸다. 참담하고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다시한번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그는 “유명을 달리하신 분과 유족분들 아직 치료 중인 환자 분들, 그리고 예기치 않은 격리로 불편을 겪으신 분께 죄송하다”면서 “환자분들은 끝까지 책임치고 치료해 드리겠다. 관계 당국과 긴밀히 협조해 이른 시일내에 완전히 해결되도록 모든 힘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차분한 목소리로 준비된 발표문을 담담히 읽던 이 부회장은 “저희 아버님께서도 1년 넘게 병원에 누워 계신다. 환자 분들과 가족 분들께서 겪으신 불안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다”라고 말한 뒤 잠시 ‘울컥’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메르스 사태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삼성서울병원의 위기대응 시스템을 개선하고 경영진단 등 필요한 후속 조치도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사태가 수습대는 대로 병원을 대대적으로 혁신하겠다. 어떻게 발생했는지 철저히 조사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응급실 등 진료환경 개선하고, 음압병실을 충분히 갖춰 환자분들께서 안심하고 편안하게 치료 받는 환경 만들겠다”고 말했다. 또한 “감염 질환 예방 활동과 함께 백신 치료제 개발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은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지만 의료진은 벌써 한 달 이상 밤낮없이 치료와 간호에 헌신하고 있다”면서 “이 분들에게 격려와 성원을 부탁 드린다”고 당부했다.

지난해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이후 사실상 삼성그룹을 이끌어온 이 부회장이 비즈니스 관련 석상이 아닌 공식 기자회견에 나와 공개발언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 오너 일가로서 사과문 발표는 지난 2008년 특검과 관련한 이건희 회장의 사과문 이후 7년만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서울병원을 관장하는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이자 삼성그룹 수장으로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직접 사태 수습에 나서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은 지난 18일에도 삼성서울병원을 직접 방문해 메르스 확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점을 사과하고 사태 수습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