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새로운 공장… 미국의 수출통제는 완전히 잘못됐다”
by김아름 기자
2025.05.21 15:21:37
AI 인프라 10년 대장정, 타이완은 핵심 거점
중국 봉쇄는 ‘스스로를 가두는 일’이라며
미국 정책 정면 비판
[타이베이(대만)=이데일리 김아름 기자] “우리는 지금 완전히 새로운 산업의 출발선에 서 있습니다. 그 산업은 바로 AI 공장입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향후 10년간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인프라가 본격적으로 구축되는 대전환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각국은 치열한 기술 경쟁 속에서도 글로벌 협력과 균형 유지라는 공통된 방향성 속에서 함께 움직이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함께 내놨다.
황 CEO는 특히 이 중요한 시기에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시행했던 AI 칩 수출 통제 조치에 대해 “완전히 잘못된 정책이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동시에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해당 통제를 철회한 것에 대해서는 “시의적절한 전환”이라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다만 황 CEO는 트럼프 행정부 역시 중국 등 일부 국가에 대한 칩 수출 제한 기조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한 듯, 사실상 미국 정부 전체의 정책 방향에 대한 문제 제기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AI 산업은 특정 국가가 독점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글로벌 기술 생태계가 함께 연결되고, 개방적으로 협력할 수 있어야 진정한 발전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 21일(현지시간) 만다린 오리엔탈 타이베이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젠슨황 엔비디아 CEO가 발언하고 있다.(사진=김아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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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황 CEO는 21일(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컴퓨텍스 2025’ 기자간담회에서 AI 시대의 지각변동을 예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타이베이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특유의 가죽 재킷 차림으로 기자들 앞에 선 황 CEO는 커피잔을 든 채 “다들 잠은 깼나”라고 너스레를 떨며 분위기를 풀었다. 그러나 이후 이어진 발언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고 단호했다.
황 CEO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향후 1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AI 인프라가 본격적으로 구축되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그는 “인터넷이 지구를 덮었던 것처럼, 이제는 AI가 지구를 덮게 될 것이다. 이는 일시적인 흐름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이며, 그 핵심에 타이완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AI를 ‘새로운 공장(new factories)’에 비유했다. 앞으로 각국 정부와 산업계는 AI 인프라를 기반으로 ‘컴퓨팅 중심의 산업 전환’을 추진하게 될 것이며, 그 흐름에서 제조의 복원력과 글로벌 분산 체계의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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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CEO는 “국가 안보상 필수적인 영역은 자국 내에서 생산하되, 기술 생태계 전반은 글로벌 연결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제조를 자국에서 할 수는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며 ‘균형 재조정(Rebalancing)’이 이뤄지는 지금이야말로 글로벌 협력의 질서를 새로 짜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이 발언은 미국의 최근 수출통제 정책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으로도 읽힌다. 기자회견 내내 여유롭던 황 CEO는 미국 정부, 정확히는 바이든 정부의 AI 칩 수출통제 조치에 대해서는 강한 어조로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미국은 AI 기술의 유일한 공급자가 아니다. 세계는 연결돼 있으며, 미국이 주도권을 유지하고 싶다면 다른 국가들이 미국 기술 기반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황 CEO는 미국의 AI 수출 통제 정책 철회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의 AI 정책을 바로잡겠다고 선언한 것은 혼란을 초래했던 기존 정책이 잘못됐음을 미국 정부가 사실상 인정한 셈”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는 수출 규제로 H20 제품을 중국에 출하할 수 없게 됐고, 그 결과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재고를 전액 손실 처리해야 했다”며 “이는 일부 반도체 회사의 매출 전체에 맞먹는 규모”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엔비디아는 중국에서 회사 전체 매출의 14%에 해당하는 약 170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H20은 그동안 엔비디아가 중국에서 합법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유일한 AI 칩이었으나, 바이든 행정부는 H20의 수출도 제한했었다.
황 CEO는 “4년 전, 바이든 행정부가 시작될 무렵, 중국 AI 칩 시장의 95%를 점유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50%로 줄어들었다”며 “게다가 우리는 사양이 낮은 제품만 팔 수 있었기 때문에 평균판매단가(ASP)도 떨어졌고 그만큼 수익도 많이 잃었다”고 했다.
황 CEO는 중국이 세계 2위의 컴퓨팅 시장으로 여전히 막대한 기회를 지닌 전략적 시장임을 강조하며, “현재 점유율이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지만, 중국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 AI 연구자들의 수준도 높다며, “전 세계 AI 연구자의 절반이 중국에 있는 만큼, 그들이 미국 기술 기반 위에서 개발할 수 있도록 미국 정부가 경쟁을 허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H20 칩의 성능을 낮춰 규제를 피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엔 “성능을 더 낮추면 시장성이 사라진다”고 일축하며, 규제 회피보다는 정책 전환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황 CEO는 이날 간담회를 통해 “지금은 인류가 AI 인프라라는 새로운 산업 기반을 구축하는 역사적 시점”이라며 각국 정부가 이 흐름을 뒷받침할 책임이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의 발언은 기술 전망을 넘어 AI가 국가 경쟁력과 산업 전략의 핵심 인프라가 되고 있음을 선언한 정치적 메시지로도 읽힌다.
| 대만 타이베이에서 개최된 글로벌 IT 전시회 ‘컴퓨텍스 2025’ 개막 둘째날인 21일(현지시간) 만다린 오리엔탈 타이베이 호텔에서 각국 기자들이 모여 있다.(사진=김아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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