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법 핀셋 개정에 재계 안도...여전히 과제 산적

by하지나 기자
2024.12.02 17:49:26

금융위, 상법 대신 자본시장법 개정 추진
재계 반발한 '이사 주주 충실 의무 부과' 제외
합병·물적분할 규제 강화로 사업재편 차질
野 반발·상법 개정 추진, 국회 통과도 변수

[이데일리 하지나 박순엽 기자] 정부가 상법 개정안에 맞서 자본시장법 개정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여전히 산업계 우려가 크다.

정부는 적용 대상 법인을 상장법인으로 한정하는 한편, 최근 합병·물적분할 등 소액주주 보호 관점에서 논란이 됐던 부분에 대한 핀셋 규제를 통해 기업에 미칠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기업들은 앞으로 합병·분할을 통한 사업 재편이 어려워지면서 자칫 기업 경쟁력 확보에 차질을 빚게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열린 ‘일반주주 이익 보호 강화를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 방향’에 대한 브리핑에서 “일반주주 보호를 위해 상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상법이 기본적으로 회사 제도에 대한 일반법이다 보니 논란이 있다”며 “이에 (정부)는 상법을 개정하기보다는 자본시장법을 개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일반주주 김병환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일반주주 이익 보호 강화를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방향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일반법인 상법 개정의 경우 법리적 측면과 법 개정이 끼칠 영향을 심도 있고 신중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상법을 개정할 시 이사의 충실 의무가 상장·비상장 모든 법인의 모든 거래에 적용돼 기업 경영이 위축되고, 이사의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시장 내 우려를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산업계에서는 정부가 그나마 상법이 아닌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방향을 튼 것에 대해선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을 포함한 8개 경제단체는 이날 “일반주주의 피해 방지와 권익 보호를 위한 정부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우선 적용 대상자가 상장사로 제한된데다 △합병 △영업 또는 자산의 양수도 △주식의 포괄적 교환 또는 포괄적 이전 △분할(분할합병) 4가지 행위에 대해서만 주주 보호 조치를 강화했다. 또한 ‘이사회가 주주의 정당한 이익이 보호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절차적 성격의 규정을 신설해 상법상 이사 충실 의무에 대한 취지를 반영하면서도 절차 준수 시 적법성과 이사회 면책을 보장했다.



하지만 재계 안팎에서는 앞으로 기업들이 사업 재편을 통해 구조조정이나 경영 효율화를 추진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우려감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대주주 자금력이 충분치 않은 기업들의 경우 그동안 신성장 사업을 위한 대규모 투자 자금 조달시 물적분할 후 상장하는 방식을 활용했는데 이 방법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선진국처럼 투자금융시장이 성숙되지 않은데다 미국의 트래킹 주식(Track Stock) 등과 같이 유연한 자금조달 방안이 없는 상황에서 대규모 자금 조달을 위해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회사의 특정 사업 부문 실적을 바탕으로 발행하는 주식인 트래킹 주식은 한 때 물적분할의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회사를 분할하지 않고도 특정 사업부나 자회사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물적 분할 없이도 신사업 부문 투자 자금 유치가 가능하다.

물적분할 후 자회사를 상장하는 경우 모회사 일반주주(대주주 제외)에게 공모신주 중 20% 범위 내에서 우선 배정하는 방안 역시 우선배정 주식 비율, 주주명부 기준일 등 실무적인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주주 평등 원칙에 따라 물적분할 후 모회사 대주주를 제외한 일반주주에게만 신주를 우선 배정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다”며 “또한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 시 기간 제한 없이 상장기업이 모회사 주주들에게 보호 노력을 이행하라는 것은 아예 우리나라가 아닌 해외에 상장하라는 것과 같다”며 우려를 표했다.

더욱이 이번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정부 야당의 동의를 얻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도 변수다. 정부는 이번주 중으로 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을 맡고 있는 이정문 의원안으로 당론이 담긴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