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피해자들, 하급심서 또 패소…法 "소멸시효 3년 경과"

by한광범 기자
2021.08.11 16:37:23

'日기업 배상책임' 대법 전합 판결 이후 두번째
"12년 대법 소부 판결 기준 소멸시효 계산해야"

지난 6월 10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강제징용 소송 각하 판결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일제 강점기 당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또다시 패소했다.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2018년 판결을 따르지 않은 두 번째 하급심 판결이다.

2012년 5월 대법원에서 사상 처음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가 강제징용 피해자 9명이 신일본제철과 신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심리하는 전원합의체가 아닌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김능한 당시 대법관이 주심으로서 내린 판결이었다. 대법원 소부는 4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주심 대법관 1명이 심리를 주도한다.

사건을 돌려받은 서울고법은 대법 판결 취지에 따라 이듬해 7월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고, 신일철주금은 재상고했다.

통상 재상고 사건의 경우 결론까지 길지 않은 시간이 걸리지만 이 사건은 5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배경엔 대법원 판결이 미칠 파장에 따른 심도 있는 심의 필요성 등이 있었다. 실제 외교가에선 50년 넘게 이어져온 청구권협정의 틀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법조계에서도 “사법부가 외교관계의 파장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하지만 근본적 배경엔 박근혜 정부 출범 후 대법원 판결에 대한 불편한 시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방향성이 달랐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당시 양승태 대법원은 숙원사업이었던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정부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결국 이를 위해 정부 인사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하기도 했다.



대법원 재상고심 판결은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김명수 대법원 체제가 들어선 이후인 2018년 10월에야 확정됐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대법원 판결에 대한 논란은 이어져왔다.

핵심은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2명의 대법관이 “청구권협정이 헌법이나 국제법에 위반해 무효라고 볼 것이 아니라면 그 내용이 좋든 싫든 지켜야 한다”며 “청구권협정으로 인해 개인청구권을 더 이상 행사할 수 없게 됨으로써 피해를 입은 국민에게 지금이라도 국가는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반대의견을 낸 것과 궤를 같이 한다.

하급심에서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부정하는 판결은 지난 6월 처음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재판장 김양호)는 지난 6월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이 낸 소송에서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보고 각하 판결했다.

1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5단독(박성인 부장판사)은 개인청구권 소멸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소송시점인 2017년 2월엔 이미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하고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대법원의 2012년 5월 판결로 객관적 권리행사 장애사유가 해소됐다”며 “이를 기준으로 단기소멸시효기간인 3년이 경과한 이후 소송을 제기했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