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죽인 가습기 살균제, '혹시 이 제품도?' 생활용품 포비아

by최은영 기자
2016.05.04 17:01:32

문제의 가습기 살균제, 10년 이상 규제 없이 팔려
''안전 못 믿겠다''..방향제·방충제·세정제 등 매출 감소
소셜커머스 3사, ''옥시 OUT''..유통업체 불매운동 동참

지난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가 기자회견을 열고 옥시 임직원 8명을 검찰에 형사 고발한다고 밝히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최은영 기자]“아이 잘 키워 보려다가 내 손으로 자식을 죽였다.”

가습기 살균제로 어린 자식을 잃은 최승운 유가족 연대 대표의 말이다. 어린이와 임산부를 중심으로 수백 명에 달하는 피해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계기로 생활용품 전반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특히 가습기 살균제처럼 화학물질이 들어간 제품에 대한 기피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과 관련 가장 많은 피해자는 낸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의 주력 제품인 표백제, 세정제, 제습제는 물론이고 방향제와 방충제, 탈취제 등이 이에 해당한다.

소비자들은 문제의 가습기 살균제가 200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 이상 판매되는 동안 아무런 규제 장치가 없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현재 판매되고 있는 제품도 어떤 유해물질을 포함하고 있을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에 사는 주부 김미영(43) 씨는 “가습기 살균제로 자녀를 잃은 한 엄마가 방송에 나와 ‘자신이 조금만 덜 부지런했어도 아이를 그렇게 보내진 않았을텐데···’라며 오열하는데 가슴이 미어졌다”며 “가습기 살균제를 사놓고 번거로워 쓰지 않은 기억이 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어떤 제품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회사원 하지은(38) 씨는 “평소 냄새에 민감해 출근길 차안에서부터 집에 돌아와서까지 방향제와 탈취제 등을 끼고 사는데 최근에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면서 “스프레이 형태의 제품은 더욱 꺼려진다. 최근에는 향초도 켜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아이를 키우는 최지영(45) 씨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생활에 필요한 모든 용품을 못 믿게 됐다”면서 “이 제품은 안전할까 의심부터 한다. 어떤 성분이 쓰였는지, 몸에 해롭지는 않은지 따져보는 습관도 생겼다”고 했다.

이러한 소비자 심리는 유통업체 판매 현황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옥시 제품은 물론 방향제, 방충제, 세정제 등 매출이 감소하고 있다.

4일 이마트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 간(4.27∼5.3) 방충제 매출은 13% 감소했고 방향제 매출은 10% 줄었다. 탈취제와 제습제 매출도 각각 13%, 46% 감소했다.

롯데마트에서도 최근 보름여 간(4.18∼5.3) 탈취제와 방향제 매출이 각각 15%, 16.8% 급감했다. 제습제 매출은 4.6% 줄었다.

이날 쿠팡·티몬·위메프 등 소셜커머스 3사는 일제히 옥시 전 제품의 판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가습기 살균제로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에 대한 반(反) 국민정서를 고려한 결정이다. 하루 전 롯데마트가 옥시제품 판매를 단계적으로 축소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유통업계에서도 불매운동에 동참하는 모양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안전규정을 준수하며 최대한 유해 성분을 배제해 가며 제품을 만들고 있는데 생활용품 전반에 걸쳐 소비자 불신이 커 당분간은 매출 하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최근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한 소비심리가 이번 사태로 위축될까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