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도 전문가·근로감독관도 "주휴수당 없애야"…정작 정부만 외면
by최정훈 기자
2021.11.23 16:45:28
文정부 들어 최저임금 급등 후 주휴수당 폐지 논의 불 붙어
첫 실태조사 "유급주휴일 미시행 33.8만곳…인건비 부담 탓"
獨·美 등 선진국 주휴수당 없어…근로감독관도 "폐지해야”
고용부 "논의 광범위해 어려워"…차기 정부로 책임 떠넘겨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문재인 정부 초기 최저임금이 급등하고 코로나19 상황까지 겹치며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주휴수당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34만 곳에 육박하는 사업장에선 인건비 부담을 호소하며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한자영업자연합회 관계자 등이 백신패스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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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소상공인뿐 아니라 전문가와 관련 실무자까지 주휴수당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정부는 실태조사를 진행한 뒤 정작 폐지 논의는 외면하면서 차기 정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이다.
주휴일 제도는 근로기준법이 제정됐던 1953년부터 존재한 제도다. 당시 전쟁 복구 상황의 가혹한 노동 현실에서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쉬어야 한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특이하게도 우리 법에서는 주휴일을 반드시 ‘유급휴일’로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쉬는 날을 보장하는 차원을 넘어 휴일에 대한 임금을 지급하도록 한 것이다.
현재 주휴수당은 주 15시간 이상 일하는 모든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하루치 법정수당으로 근로자가 한 주를 개근하면 받게 된다. 사업주로서는 매주 5일 일하는 근로자가 결근하지 않으면 6일 치 임금을 줘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현 정부 첫해에 결정한 2018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16.4%에 달했다. 이듬해인 2019년 최저임금도 인상률도 10.9% 달하면서 2017년 최저임금(6470원)은 2년 만에 29.1%(8350원) 급등했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9160원으로 2017년 대비 41% 가량 올랐다.
특히 2018년에 주휴수당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인건비 부담을 느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2019년 정치권에서도 폐지논의에 불이 붙었고, 정부는 논의의 기초가 될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23일 고용노동부가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급 주휴일이 법정 의무 사항임에도 유급 지급을 하지 않거나 모르는 사업장이 약 30%에 달했다. 이어 유급 주휴일을 부여하지 않거나 고려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인건비 부담인 것으로 집계됐다. 인건비 부담을 1순위로 꼽은 사업장은 전체 유급 주휴일 미시행 사업장 33만8105곳 중 47%(16만709곳)를 차지했다. △주 15시간 미만 근로자로 지급 의무 없음(16.7%) △인력 운영의 어려움(14.3%) △근로자와 합의함(8.6%) 등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시행 이유의 1순위와 2순위를 합치면 인건비 부담이 62.1%(21만131곳)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또 미시행 사업장의 대부분은 1~4인 이상 사업장(27만8328곳)이었다. 임금 수준은 최저임금 수준으로 맞춰 지급한다는 비율이 82.6%에 달했다. 즉, 최저임금 인상 영향을 크게 받는 소기업이나 소상공인에서 인건비 부담을 호소하며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학계에선 이미 주휴수당이 도입 취지를 잃었고, 오히려 처벌받을 수도 있는 임금 계산에 혼란을 줄 수 있어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해외에서 주휴수당을 유지하는 곳은 스페인·터키·멕시코·대만·브라질·콜롬비아·태국·인도네시아 등 8개국뿐이다. 미국·일본·독일·프랑스 등 대부분 선진국은 주휴수당을 노사가 협의해 정하고 있다. 게다가 국제노동기구(ILO)도 휴일 급여 지급은 명시하지 않고 있다.
주휴수당 관련 현장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고용부 내에서도 주휴수당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석은 고용부 천안지청 근로감독관은 최근 논문을 통해 “주휴수당 관련 근로감독을 통해 법과 현실의 괴리를 경험했다”며 “주휴수당은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휴수당이 근로의 대가가 아닌 생활 보장적 금품에 가까운 만큼, 근로 제공이 없는 시간에 대해 사용자가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시대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아울러 주휴수당으로 인해 고용의 질이 더 악화하는 부작용도 발생했다. 주휴수당 지급을 회피하기 위해 쪼개기 계약이 성행하면서 주 15시간 미만 초단기 근로자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올해 3분기와 2019년 3분기 청년 임금 근로자의 계약 기간을 비교했을 때 15시간 미만 일하는 초단시간 근로자는 3만7000명 늘어났다.
그러나 정부는 주휴수당 실태조사 결과와 부작용 속출에도 폐지논의를 외면했다. 논의 범위가 광범위하다는 이유에서다. 고용부 관계자는 “월급제 근로자는 주휴수당을 폐지해도 크게 변할 게 없지만, 일당제나 시급제 근로자의 경우 소득 감소로 반발이 클 수 있다”며 “주휴수당 폐지 요구는 많았지만 광범위하고 예민한 문제라 논의를 진행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주휴수당의 폐해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며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감소분을 대체할 대안을 마련하면서 폐지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주휴수당 폐지는 이론적으로 공감 받지만 노동계 반발 등 현실적인 문제로 정부가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하는 것”이라며 “주휴수당 폐지로 소득 감소 이뤄지는 노동자는 경과 규정을 둬서 일정 기간 소득 수준을 유지하게 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한 뒤 주휴수당 폐지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