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아들에 살해당한 가장… 생전 메모엔 “가족 보면 힘 얻는다”
by송혜수 기자
2023.03.20 18:43:45
[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10대 아들과 공모해 남편을 살해하고도 수사기관에는 남편의 상습적인 가정 폭력 때문에 범행했다고 거짓 진술한 아내에게 검찰이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아들에게는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20일 대전지검은 대전지법 형사12부(나상훈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A(43)씨와 아들 B(16)군의 존속살해 혐의 사건 결심 공판에서 A씨에게 무기징역을, B군에게는 징역 20년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모자는 지난해 10월 8일 대전 중구 아파트에서 가장이자 남편인 C(50)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두 사람은 C씨가 잠들자 부동액을 넣은 주사기로 C씨의 심장 부근을 찔렀고, 잠에서 깬 C씨가 저항하자 흉기로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B군은 이후 숨진 C씨의 시신을 욕실로 옮겨 씻던 중 흉기로 훼손한 혐의(사체손괴)도 받는다.
앞서 같은 해 9월 18일에는 A씨가 귀가한 C씨와 사업 실패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다 소주병을 던져 다치게 하고, 이틀 뒤인 20일에는 소주를 넣은 주사기로 잠자고 있던 C씨의 눈을 찌른 혐의(특수상해)도 있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C씨가 평소 가정 폭력이 심해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B군은 “사건 당일에도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를 말리다가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증언했다. 참고인 조사를 받던 A씨도 “남편이 자주 술을 마시고 폭행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의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 오히려 술병으로 맞아 상처를 입은 것은 C씨로 드러났다. 그러자 B군은 ‘아빠가 나쁜 사람인 것처럼 부풀렸다’며 허위 진술이었음을 시인했다.
C씨는 생전 아내와 아들에게 지속적으로 괴롭힘과 폭행을 당하면서도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는 안과 진료 후 의사에게 ‘나뭇가지에 찔린 상처’라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자신의 여동생에게는 사고로 눈을 다쳤다고 둘러대기도 했다.
사망 사흘 전 C씨가 작성한 노트에는 눈을 다친 뒤에도 아직 시력이 회복되지 않아 고통스럽다는 이야기와 함께 ‘아내와 자식을 보면 힘을 얻는다’는 내용의 메모가 적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검찰은 “A씨 진술에 따르면 고인은 흉기에 찔린 후에도 ‘아들이 감옥에 가면 안 된다. 날 병원에 데리고 가라’고 했다고 한다”며 “아내가 또다시 자신을 다치게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끝까지 아내와 아들에게 애정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A씨는 남편에게 제초제와 최면진정제, 정신신경용제를 투여하고 가슴을 부동액으로 찌른 데 이어 둔기를 휘둘러 남편을 살해했다”며 “아들과 함께 잔인한 살인 방법을 계획한 뒤 실행하고도 고인이 상습적인 가정폭력범인 것처럼 주장해 명예를 훼손하기까지 했다”고 지적했다.
증인신문에 나선 C씨의 어머니는 “몇 번을 다시 생각해도 아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모르겠다”며 “자식을 살인자로 만들어놓고도 형량에 도움을 받으려는지 며느리가 자꾸 반성문을 내는 것을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아끼던 처자식에게 잔혹하게 공격당했을 마음이 생각나 제가 살아야 할 이유를 자꾸 잊게 된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지난해 11월 15일부터 현재까지 거의 매일 86차례에 걸쳐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한 A씨는 최후 진술에서 “시댁 식구들에게 머리 숙여 정중히 사과드린다”며 “가정의 불행은 저 혼자 짊어졌어야 했는데 아들에게 고통을 주어 미안하고,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말했다.
선고 공판은 다음 달 14일 오후 2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