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민子 '몰래 녹음' 증거 인정…교원단체들 잇단 '반발'(종합)
by박정수 기자
2024.02.01 16:33:35
‘웹툰 작가 주호민 아들 정서적 학대’ 특수교사 유죄
벌금 200만원 선고유예…"녹음파일 증거능력 인정"
법조계 "정서적 아동학대 혐의 실체적 진실 발견 위함"
교육단체 "불신과 감시의 장으로 변질시킬 것" 주장
[이데일리 박정수 김윤정 기자] 웹툰 작가 주호민씨의 아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특수교사에 대해 1심 재판부가 유죄로 판단했다. 특히 사건의 쟁점이었던 자녀 몰래 녹음기를 들려 보내 확보한 녹취록과 관련해 재판부는 정당행위로 인정, 증거능력이 있다고 봤다.
| 웹툰 작가 주호민이 1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주 씨의 아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특수교사 A씨 1심 선고 공판이 끝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
1일 수원지법 형사9단독 곽용헌 판사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과 장애인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2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선고유예는 유죄는 인정하지만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미루고 그 기간이 경과한 때 면소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판결이다.
A씨는 2022년 9월 13일 경기도 용인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주씨 아들 B군에게 “버릇이 매우 고약하다”, “나도 너 싫어, 정말 싫어”라고 말하는 등 피해 아동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의 이러한 발언은 주씨 부인이 아들의 가방에 녹음기를 몰래 넣어 녹음한 2시간 30분 분량의 녹취 파일에서 발견됐다. 주 씨 부부는 이를 근거로 A씨를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현행법상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를 청취 및 녹음할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아들 가방에 녹음기를 들려 보낸 것에 대한 갑론을박이 일기도 했다. 또 최근 대법원은 피해 아동의 부모가 몰래 녹음한 교사의 수업 시간 중 발언은 ‘공개되지 않은 대화’에 해당, 증거능력이 부정된다고 봤다.
하지만 재판부는 쟁점이었던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주씨의 아들과 A씨가 한 대화가 통신비밀보호법이 규정하고 있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에 해당하지만, 대화의 녹음행위에 위법성 조각 사유가 존재하는 경우 그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곽 판사는 “이미 4세 때 피해자는 자폐성 장애로 장애인으로 등록됐으며 인지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아동학대 범행을 스스로 방어할 능력이 없었던 점, 피해자 모습이 평소와 다르다고 느낀 모친 입장에서 신속하게 이를 확인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봤다. 이어 “표현 능력이 있는 학생들의 수업이 이뤄진 교실과 달리 이 사건은 폐쇄회로(CC)TV가 설치되지 않은 맞춤 학습실에서 소수의 장애 학생만 피고인의 수업을 듣고 있었으므로 말로 이뤄지는 정서학대의 특성상 녹음 외 학대 정황을 확인하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할 때 모친의 녹음행위는 정당행위로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에 대해 아동학대 혐의라는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공익’이 더 컸기 때문에 녹음파일을 증거능력으로 인정했다고 본다. 정천석 동인 변호사는 “녹음기로 확보된 녹음파일이 비록 불법적으로 획득한 것이더라도 그 증거능력이 모두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며 “법원으로서는 효과적인 형사소추와 형사소송에서의 진실발견이라는 공익과 개인의 인격적 이익 등의 보호이익을 비교 형량해 그 증거능력 유무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판례를 보면 법원은 그 비교 형량을 함에 있어서는 증거수집 절차와 관련된 모든 사정, 즉 사생활 내지 인격적 이익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 여부 및 정도, 증거수집 과정에서 사생활 기타 인격적 이익을 침해하게 된 경위와 침해의 내용 및 정도, 형사소추의 대상이 되는 범죄의 경중 및 성격, 피고인의 증거동의 여부 등을 전체적ㆍ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또 법원은 단지 형사소추에 필요한 증거라는 사정만을 들어 곧바로 형사소송에서 진실발견이라는 공익이 개인의 인격적 이익 등 보호이익보다 우월한 것으로 섣불리 단정해서도 안 된다. 정 변호사는 “주씨 가족이 녹음한 녹음파일과 이를 기초로 작성된 녹취록은 주씨 자녀가 피해자이므로 통신비밀보호법위반이라는 위법행위는 정당행위로 위법성이 조각(정당화)되고 따라서 대법원 판례 등 법리에 따라 증거능력이 인정돼 유죄의 증거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녹음파일 취득 경위와 방법, 범죄 경중과 성격 등을 종합해볼 때 아동학대 혐의라는 실체진실 발견이라는 ‘공익’과 침해된 특수교사 등 개인의 사생활과 인격적 이익이라는 ‘사익’을 비교 형량해서 사익이 더 크다고 보기 어려워 녹음파일과 녹취록의 증거능력을 재판부가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교원단체들은 이번 판결에 대해 교사들의 교육활동을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 우려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수원지법 판결은 불법 몰래 녹음을 인정해 학교 현장을 사제간 공감과 신뢰의 공간이 아닌 불신과 감시의 장으로 변질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얼마나 많은 몰래 녹음과 아동학대 신고가 이어질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교원이 고통받고 교육 현장이 황폐해질지 우려스럽다”고 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교육활동을 아동학대로 왜곡한 판결은 유감”이라며 “교육방법이 제한적인 특수 교육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초등교사노동조합도 “몰래 녹음 자료를 근거로 해 정서적 아동학대 혐의로 피소당한 특수 선생님에 대해 증거능력을 인정한 1심 선고유예 판결에 유감의 뜻을 밝힌다”고 했다.
한편 A씨의 변호인은 1심 판결에 반발해 즉각 항소 방침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