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인경 기자
2015.12.21 15:26:41
올해 기업 개선 등 요구 309개펀드 이를 듯…전년比 30%↑
日 세븐&아이홀딩스·韓 삼성물산 등 아시아 기업에도 관심
[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행동주의 펀드’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 헤지펀드에서 출발한 이들은 이제 대륙을 넘어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시장에서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1일 영국 투자 정보업체 ‘액티비스트 인사이트’에 따르면 기업에 경영 개선 등을 공식적으로 요구한 행동주의 펀드의 수는 올해 상반기에 212개를 기록했다. 지금 추세라면 올해 말까지 309개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지난해보다 무려 30% 증가한 것이다.
행동주의 펀드는 특정 기업 지분을 대거 사들인 뒤 경영에 적극 참여해 보유한 주식의 가치를 끌어 올려 수익을 내는 펀드다. 이들 펀드는 지분을 무기 삼아 임원의 해임 또는 선임은 물론 자회사 매각 등 사업 전략의 재검토, 자사주 매입과 실적 개선에 적극 개입한다.
지난 11일 발표된 글로벌 화학업체 다우케미컬과 듀폰의 합병에도 행동주의 펀드의 모습이 두드러졌다. 이들 화학 업종은 현재 부진한 실적을 내고 있지만 잠재력이 큰 신사업을 보유하고 있다. 장래성을 보고 이들 종목에 투자한 행동주의 펀드들은 비용절감과 신사업 확대를 요구한 것이다.
대니얼 로브가 세운 써드포인트 매니지먼트는 다우에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분리하라고 요구했다. 넬슨 펠츠가 이끄는 헤지펀드 트라이언 펀드 매니지먼트 역시 듀폰에 비용 절감과 함께 분사와 자사주 매입 확대를 압박했다.
미국 PC업체 델이 스토리지(저장 장치) 회사인 EMC 그룹을 인수하기로 결정한 것도 행동주의 펀드의 입김이 작용했다. 행동주의 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EMC에 유력 자회사 매각이나 양도를 강요하자 결국 그룹 전체를 델에 매각하는 방향으로 정리했다.
이같이 기업의 주요 결정에 영향력을 높이고 있는 행동주의 펀드 수는 현재 전 세계에 500개가 넘는다. 이들의 운용자산은 1400억달러(약 165조원)에 이른다.
이들이 급성장한 것은 그럴만한 ‘수익률’을 냈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행동주의 펀드는 연평균 9%의 성과를 냈다. 일반 헤지펀드의 수익률(7.6%)을 웃도는 성적이다.
특히 올들어 유가 급락과 중국의 성장 둔화, 미국의 금리 인상 등으로 글로벌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펀드 수익률도 갈지자 행보를 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행동주의 펀드는 기업 곳간을 주주에게 환원하라고 요구할 만큼 경기 영향을 비교적 덜 받는다. 변동성에 흔들리는 여타 펀드와 달리 꾸준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행동주의 펀드는 미국과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기업들을 상대로 경영 개입에 나선 펀드 수는 지난해에 14개였으나 올해 상반기에만 10개에 이를 정도다.
실제로 써드드포인트가 일본 편의점 회사 ‘세븐 & 아이 홀딩스’ 주식을 매입하는가 하면 한국 삼성물산(028260)에 투자한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이의를 제기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행동주의 펀드가 주주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기업의 설비투자를 가로막아 장기적인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행동주의 펀드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평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