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은 양극화 주범…"비정규직·여성·노인 소득 크게 줄어"
by이윤화 기자
2021.11.09 17:40:21
보건사회연구원, 팬데믹 전후의 빈곤·불평등 동향 비교
임시·일용직 근로자·자영업자·여성 등 소득 더 많이 줄어
재난지원금 등 정부 재정지출, 공적 개입 일정 부분 방어
구조적 불평등 심화 우려, 한국은행도 중앙銀 역할 고민
[이데일리 이윤화 기자]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이 우리나라 전체 빈곤율을 높인 가운데 임시·일용직 등 비정규직 근로자와 여성과 노인 등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큰 타격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사회적 거리 두기 등 비대면 방역지침 타격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은 자영업자의 피해도 컸다.
소득 분배의 불평등 정도도 심화된 가운데 정부의 지원금 등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이를 어느 정도 방어하고 있으나 일시적인 지원의 효과가 사라진 이후 K자 양극화가 더욱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9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최근 분배 현황과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팬데믹 전후 빈곤과 불평등 동향을 비교한 결과 코로나19 발생 이후 그 이전에 비해 빈곤율과 불평등도가 크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2012~2020년)’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코로나19의 영향과 정부지원의 효과 평가 조사’(2020년 10월, 11월)를 활용했다.
조사 결과 전체 빈곤율은 코로나19 1차 대유행 직후인 2020년 4월을 기준으로 코로나 발생 이전인(2019년 9월)에 비해 4.4%포인트 증가한 16.4%를 기록했다. 지니계수도 같은 기간 0.2824에서 0.0335 증가한 0.3159를 기록했다. 지니계수는 0~1로 구성돼 0에 가까울수록 소득 분배가 평등함을 의미한다. 코로나가 우리 국민들의 전체 빈곤율을 높이고 소득 분배 불평등을 심화시켰단 의미다.
특히 고용상태가 불안정하거나 여성인 경우 더 큰 타격을 입었다. 임시·일용직, 특수고용, 자영업에 종사하는 가구주를 둔 가구의 빈곤율이 크게 상승했다. 2019년 9월 대비 2020년 4월 상용직의 빈곤율은 0.2%포인트 줄어든 반면 특수고용직의 빈곤율은 14.4%포인트, 자영업자의 빈곤율은 13.5%포인트 올랐다.
연령대별 지니계수는 수치로만 놓고 보면 60대 이상이 지난해 4월 기준 0.3417로 가장 높았으나, 증감율로만 따진다면 40대~50대 가구주를 둔 가구들 간의 불평등도가 0.0353 증가하면서 가장 크게 상승했다. 이는 생계를 책임지는 경제활동 인구 핵심 연령대가 코로나19 타격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경제활동 상태별로 볼 때 임시일용직과 특수고용은 각각 6.2%, 6.7%가 2020년 1~9월 사이에 실직을 경험했으며, 특수고용의 64.8%는 단축근로, 무급휴직 등 어떤 형태로든 근로활동 위축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영업자의 26.4%는 단축근로, 12.7%는 휴업을 경험했으며, 약 40%가 영업이나 근로 상황에 피해를 입은 것으로 조사됐다.
성별로 분류했을 때는 여성(31.1%)이 남성(26.8%)에 비해 근로활동 변화를 경험한 비율이 더 높았을 뿐 아니라 실직(6.5%) 등 상대적으로 더 타격이 큰 변화를 경험했다.
반면 2020년 5월 1차 재난지원금이 지급된 이후인 지난해 9월 빈곤율은 15.6%로 4월(16.4%)보다 0.8%포인트 낮았다. 지니계수 역시 2020년 4월 0.3159에서 9월엔 0.0076 낮아진 0.3083를 기록했다. 이는 정부의 재난지원금 등 재정 지출이 늘어난 영향으로 분석됐다.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여유진 선임연구원은 “근로소득·시장소득 빈곤율과 불평등도는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공적 지출과 공적 이전이 이를 저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보장기여금 등 공적 지출과 각종 사회보장제도 등 공적 이전의 소득재분배 역할이 강화되고 있으나,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노동시장 이중 구조화와 상대적으로 빈곤한 노인 가구의 증가는 구조적인 문제여서 ‘K-양극화’ 우려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우리나라 노인의 상대적 빈곤 위험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대비 매우 높은 수준이다. 지난 2017년 노인 관련 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7%로 OECD 회원국 평균(7.4%)의 36.5%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한국은행 내부에서도 불평등 완화에 대한 주제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경기와 물가에 집중했던 중앙은행도 불평등 완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서영경 위원은 지난 9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금리 인상으로 인한 금융 불균형 완화가 자산 불균형 시정과 거시 경제 안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새 금통위원으로 임명된 박기영 위원 역시 경제적 불평등 해소 등 새로운 통화정책을 운용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 위원은 지난 달 6일 임명 소감을 밝히면서 “경제적 불평등, 기후 문제 등 중앙은행이 새롭게 직면하는 도전들에 대해 고민하겠다”고 말했다.